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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대림절 첫째 주일오전예배 설교] 이사야 2장 1절-5절, 빛으로 오시는 평화: 전쟁의 시대, 대림절을 맞으며

이사야 2장 1-5절을 본문으로 한 2025년의 대림절 첫 주 설교입니다. 전쟁과 갈등의 시대, 칼을 쳐서 보습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평화(שלום)를 선포합니다. 어둠 속에서 여호와의 빛으로 걷기를 결단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11월 30일 대림절 첫째 주일오전예배 설교] 이사야 2장 1절-5절, 빛으로 오시는 평화: 전쟁의 시대, 대림절을 맞으며



이사야 2장 1절-5절, 빛으로 오시는 평화: 전쟁의 시대, 대림절을 맞으며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104장, 곧 오소서 임마누엘
  • 새 찬송가 505장, 온 세상 위하



서론: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선명합니다

할렐루야. 대림절 첫 번째 주일, 주님의 전을 찾으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강단에 '소망의 촛불' 하나를 켰습니다. 예배당의 조명을 다 끄고 이 작은 촛불 하나만 남겨둔다면 어떻게 될까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이 작은 빛은 더욱 선명하고 간절하게 보일 것입니다.

대림절(Advent)은 바로 그런 절기입니다. 세상이 밝고 화려해서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이 너무나 어둡고,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어둠을 걷어낼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기에, "빛이신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이사야 선지자의 시대도 그랬습니다. 밖으로는 앗수르 제국이 칼을 갈며 위협하고 있었고, 안으로는 우상숭배와 불의가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점쟁이를 찾거나 강대국의 눈치를 보느라 바빴습니다. 바로 그 절망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이사야의 눈을 들어 먼 미래, 그러나 반드시 이루어질 '어떤 산'을 보여주십니다. 이 시간, 우리도 믿음의 눈을 들어 그 산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본론


대지 1. 비전: 거슬러 올라가는 역설

이사야가 본 비전은 충격적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 이사야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고대 세계에서 산은 신들의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더 높고 웅장한 산이 있는 나라의 신이 강하다고 믿었습니다. 시온 산은 해발 700~800m 정도의 낮은 언덕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작은 산이 세상의 모든 거대한 산들—군사력의 산, 경제력의 산, 이데올로기의 산—위에 우뚝 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의 그 어떤 가치보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고 합니다. 원어의 의미는 '강물처럼 흘러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이 환상에서는 강물이 거꾸로 산을 타고 올라갑니다. 이것은 '거룩한 역설'입니다. 무엇이 이방 민족들을, 하나님을 모르던 자들을 거슬러 올라가게 합니까?

그 답이 3절에 있습니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들은 떡을 구하러 오는 것도, 무기를 구하러 오는 것도 아닙니다. "주의 길(His ways)"을 배우기 위해 옵니다. 세상의 화려함과 쾌락에 지친 영혼들은 결국 '진리'를 찾게 되어 있습니다. 돈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권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두려움을 해결할 유일한 답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깨닫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곧 성전이 되셨고, 십자가에 높이 들리심으로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로 이끄셨습니다(요 12:32). 교회는 바로 이 인력이 작용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보다 더 부유하거나 힘이 세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생명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이곳으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대지 2. 변화: 용광로 앞에서 일어나는 혁명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통치하는 곳, 즉 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4절의 말씀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 이사야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이 구절은 너무나 유명하여 UN 본부 앞마당 비석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평화조약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쳐서(כָּתַת, 카타트)'라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이것은 대장간의 이미지입니다. 단단한 무쇠 칼을 농기구인 보습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손으로 구부린다고 됩니까? 아닙니다. 시뻘건 용광로 불에 집어넣어 달구고, 무거운 망치로 수백 번, 수천 번을 내리쳐야 합니다. 모양을 완전히 뭉개고 다시 빚어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안하기에 손에 '칼'을 쥐고 태어납니다. 나를 방어하기 위한 핑계의 칼, 남을 찌르는 비판의 칼,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의 창을 들고 있습니다. 이 칼을 내려놓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일입니다.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 대신 심판의 망치를 맞으셨습니다. 십자가라는 용광로에서 자신의 몸을 녹이셨습니다. 그 사랑을 경험한 자만이 비로소 손에 쥔 칼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아, 내가 칼을 휘두르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는구나. 내가 남을 찌르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존귀하구나." 이 깨달음이 올 때, 살인의 도구(칼)는 생명을 살리는 도구(보습)로 변합니다. 경쟁자를 찌르던 혀가, 이웃을 위로하는 혀로 바뀝니다. 움켜쥐던 손이, 베푸는 손으로 바뀝니다. 이것이 복음이 가져오는 진정한 혁명입니다.


대지 3. 적용: 미래를 당겨와 오늘을 걷는 사람들

이제 이사야는 1절부터 4절까지의 웅장한 비전을 보여준 뒤, 시선을 돌려 5절에서 지금 자신의 백성들을 쳐다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칩니다.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이사야 2:5,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이것은 초청이자 동시에 뼈아픈 질책입니다. "이방인들도 먼 훗날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저렇게 산으로 몰려가는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너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점을 치고, 이방인과 손을 잡고, 우상을 숭배하며 '어둠' 속에 걷고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말합니다. "미래는 이미 결정되었다. 승리는 하나님의 것이다. 평화의 나라가 올 것이다. 그러니(Therefore), 우리는 오늘부터 그 나라 백성답게 살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림절을 지내는 우리의 태도가 이와 같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천국 가겠지"라며 막연히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미 오신 예수님(Already)과 다시 오실 예수님(Not Yet) 사이에서, 미래의 빛을 오늘로 당겨와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뉴스는 전쟁 소식을 전하고, 사람들은 서로를 혐오합니다. 그 어둠 속에서 "나도 어쩔 수 없어"라며 똑같이 칼을 들고 싸우시겠습니까? 아니면 "나는 평화의 왕을 모신 사람이다"라며 보습을 들고 생명의 밭을 가시겠습니까?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Walk in the light)"는 것은 추상적인 말이 아닙니다. 어두운 방에 불을 켜면 모든 것이 드러나듯, 하나님 앞에서 숨길 것 없이 정직하게, 그리고 그분의 따뜻한 성품을 닮아 사랑하며 걷는 구체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11월 30일 대림절 첫째 주일오전예배 설교] 이사야 2장 1절-5절, 빛으로 오시는 평화 - 전쟁의 시대, 대림절을 맞으며



결론: 평화의 식탁으로의 부르심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먼 미래의 꿈같은 이야기로 보이지만, 사실은 오늘 우리의 결단을 요구하는 치열한 현실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금 전쟁터 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갈 곳이 있습니다. 세상의 산이 아니라 '여호와의 산'입니다.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습니다. 칼을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칼을 쳐서 생명의 도구로 바꾸는 일입니다.

오늘 성찬의 식탁 앞에 나오실 때, 여러분 마음속에 숨겨둔 날카로운 칼들을 다 가지고 나오십시오. 미움의 칼, 원망의 칼, 불안의 칼... 주님의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고, 그것들을 녹여주시기를 구합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살과 피를 주시며, 우리를 평화의 도구(Peacemaker)로 빚어주실 것입니다.

이 대림절 기간, 어둠 속을 걷는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 함께 가자, 빛이 있는 곳으로!"라고 손 내미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평화의 왕이신 주님, 대림절을 맞아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님은 평화를 주러 오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마음속에 미움과 비판의 칼을 쥐고 살았음을 회개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의 강퍅한 마음을 녹여주시고, 서로를 찌르던 칼이 변하여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분쟁이 있는 곳에 화해를 심으며, 이제 어둠을 떠나 여호와의 빛 가운데 걷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를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우리 가정이 비난을 멈추고 서로를 살리는 평화의 터전이 되게 하소서.
  • 한국 교회가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을 이끄는 거룩한 산이 되게 하소서.
  • 전쟁 중인 나라들에 주님의 평화가 임하고, 분열과 다툼이 멈추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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