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공감의 시작 “주님, 제가 아직도 일꾼일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의 따뜻한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에 조용히 내려앉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는 참 바쁘게 살아갑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직장과 가정, 수많은 관계와 교회의 일들이 마음속에 가득 차,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먼저 지치곤 합니다. 요즘 많은 성도님이 “특별한 문제는 없는데 기운이 없고, 기도는 해야겠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고백하십니다. 그러면서 ‘내가 믿음이 없고 헌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스스로 자책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습니까?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이런 영적 무기력과 죄책감에 눌릴 때가 많습니다. 봉사가 힘들면 충성심이 사라진 것 같아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왜 이렇게 게으르냐”며 매섭게 몰아세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오늘 본문은 지친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깊은 시선을 보여주십니다. 마태복음 9장 36절입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예수님은 무리의 겉모습이나 종교적인 성실함을 평가하지 않으시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생하고 기진한 그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셨습니다. 여기서부터 오늘 우리의 설교가 시작됩니다. 우리 주님은 지친 이에게 일을 떠맡기시는 분이 아니라, 지친 이를 가장 먼저 불쌍히 여기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설교 제목인 “일꾼입니까”에 무거운 부담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은 책망이 아니라, “너는 내 눈에 가장 깊이 담긴 사람이며, 바로 그런 너를 통해 세상을 살리고 싶다”는 따뜻한 음성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소모품이 아니라 ‘먼저 사랑받은 사람’으로 부르시고, 그 풍성한 사랑을 누린 자를 비로소 동역자로 세워주십니다. 본론 오늘 우리는 이 은혜의 음성을 따라 세 가지 걸음을 함께 걷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
서론: 공감의 시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주님의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 조용히 내려앉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참 바쁜 시대를 살아갑니다. 하루를 열심히 살았는데도 마음 한쪽에는 이상하게 허전함이 남습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나는 충분하지 않은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몸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오래전부터 지쳐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어떤 분은 관계 때문에 지쳤고, 어떤 분은 반복되는 책임 때문에 지쳤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느낍니다. 또 어떤 분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조용히 버티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너무 오래 견디다 보니 마음의 숨이 가빠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이 어떻게 다가오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사람만 부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무너진 자리, 부끄러운 자리, 손댈 수 없는 아픔의 자리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은 무거운 명령만이 아닙니다.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시는 따뜻한 음성입니다. 본론 1대지: 하나님의 마음 발견 — 예수님은 멀어진 사람을 먼저 찾아오십니다 마태복음 9장 9절에서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보십니다. 마태복음 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당시 세리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로마의 세금을 거두며 동족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마태는 돈을 벌고 있었지만,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에 갇혀 살았을 것입니다. 이름은 불렸지만 사랑으로 불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의 과거보다 마태의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세리라고 불렀지만, 예수님은 그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이 짧은 말씀 안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