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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8일 주일오전예배설교] 마태복음 5장 13절-20절, 썩지 않는 소금과 꺼지지 않는 등불 - 주현절 후 다섯 번째 주일

[2026년 2월 8일 주일오전예배설교] 마태복음 5장 13절-20절, 썩지 않는 소금과 꺼지지 않는 등불 - 주현절 후 다섯 번째 주일



도입: 실존적 충격과 우리의 현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종이 위에 인쇄된 고전이 아닙니다. 이것은 태산 깊은 곳에서 캐낸 보석이며, 우리 죽은 영혼을 살려내기 위해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총체적인 교향곡입니다. 오늘 우리는 산상보훈의 심장부에서, 우리 존재의 근원을 뒤흔드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보십시오. 겉으로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어떻습니까? 최근 뉴스에 보도되는 사회적 재난과 비인간적인 범죄들을 보십시오. 인간의 부패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 앞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 너무 너무 빠른 속도로 썩어가고 있습니다. 겉은 멀쩡해 보이나 속은 이미 송장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공동묘지와 같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세상 속에 주님은 오늘 우리를 향해 충격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이것은 우리가 노력해서 쟁취해야 할 목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λόγος, 로고스)을 소유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존재론적인 선포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맛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세상이라는 절벽 아래로 아차 하는 순간 추락해버릴 가장 비참한 존재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영적 위기 속에서 오직 말씀의 회복(ἀποκατάστασις, 아포카타스타시스)만을 구해야 합니다.



본론


1. 존재의 맛을 잃어버린 미련함 (13절)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여기서 '맛을 잃다'는 뜻의 헬라어 μωρανθῇ(모란데)는 본래 '미련하게 되다'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는 것은 단순히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우주에서 가장 미련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비극이라는 뜻입니다.

소금은 자신을 녹여야만 부패를 막고 맛을 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세상 속에서 자신을 녹여내기는커녕, 세상보다 더 단단한 고집과 탐욕의 덩어리가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척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돈과 명예 앞에 벌벌 떨며, 자존심 때문에 이웃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들을 쏟아냅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맛을 잃은 소금은 길가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뿐입니다. 복음의 야성을 잃어버린 성도는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됩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여전히 죄를 이기는 복음의 짠맛이 남아 있습니까? 아니면 세속주의라는 독배를 마시고 무색무취한 식물인간처럼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다시 복음의 전능성(εὐαγγέλιον, 에우앙겔리온)을 회복해야 합니다.


2. 숨길 수 없는 복음의 광채 (14-16절)

또한 주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φῶς, 포스)이라 부르셨습니다. 빛은 어둠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비출 뿐입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하듯,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영혼은 결코 숨겨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등불을 켜서 말(μódιος, 모디오스)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둡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자꾸 우리의 신앙을 숨기려 합니까? 직장에서, 학교에서 그리스도인임을 부끄러워하며 바구니 속에 등불을 가두어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시는 '착한 행실'은 도덕적 수양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불붙는 사랑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성도가 고난 속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찬양할 때, 세상은 비로소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냄새'를 맡게 됩니다. "저 사람 안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구나! 저 불꽃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라는 탄성이 터져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어둠 속에 떨고 있는 영혼들을 치유하는 빛의 사명입니다.


[2026년 2월 8일 주일오전예배설교] 마태복음 5장 13절-20절, 썩지 않는 소금과 꺼지지 않는 등불 - 주현절 후 다섯 번째 주일


3. 율법을 완성하는 하나님의 절대 은혜 (17-20절)

마지막으로 주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πληρῶσαι, 플레로사이) 하러 오셨다고 선언하십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의 의는 겉모양만 꾸미는 '박제된 의'였습니다. 주님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엄히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절망을 줍니다. 우리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전적 부패한 죄인들입니다. 우리는 수백억의 빚을 진 파산자이며, 영적으로는 식물인간과 같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복음의 신비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주님이 대신 다 지키셨고, 우리에게 그 의를 거저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절대 은혜(χάρις, 카리스)입니다. 우리는 공로가 없으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덮을 때 우리는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를 소유하게 됩니다. 이 은혜를 경험한 자는 억지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 때문에 믿음의 길을 걷게 됩니다.



결론: 선포적 마무리와 파송


성도 여러분, "내가 어떻게 소금과 빛으로 살 수 있을까?"라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우리 안에 복음의 불(πῦρ, 퓌르)을 붙이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이 우리 인생의 모든 책임을 지시고 마침내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묶고 있는 고질적인 죄의 사슬, 여러분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과거의 상처들, 이 모든 어둠은 오늘 이 시간 선포되는 말씀 앞에 항복할 줄 믿습니다. 성령의 불이 임하면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게 되어 있습니다.

무조건 믿음으로 걸어가십시오. 계산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으십시오. 그러면 메마른 반석에서 생수가 터지고, 썩어가는 세상 속에서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력이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냄새가 배어 나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하십니다!



함께 하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를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자기를 녹이지 못해 맛을 잃고 미련하게 살아왔던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속에 복음의 생명력을 회복시켜 주셔서, 썩어가는 세상 속에서 진동하는 악취를 막고 하나님의 냄새를 풍기게 하옵소서. 우리가 인생을 책임지려 애쓰지 않고, 모든 책임을 지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담대히 믿음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세속주의에 물들어 잃어버린 복음의 야성과 짠맛을 회복하게 하소서.
  •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예수의 생명을 세상에 비추게 하소서.
  • 인간의 의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전폭적인 은혜로만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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