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가 갈망하는 ‘지혜’의 표준
바울이 도착한 고린도는 당대 최고의 수사학과 철학, 그리고 세속적 성공이 지배하던 도시였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에게 ‘지혜’란 타인을 압도하는 논리, 청중을 매료시키는 화술,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는 사회적 지위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며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보다 더 정직해야 하고, 더 깊이 사유해야 하며, 우리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설득력 있는 삶의 모델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라고 명하십니다.
2. 왜 우리는 자꾸만 ‘성공’의 유혹에 넘어지는가?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의 방식인 ‘힘과 과시’를 갈망합니다.
현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안에는 뿌리 깊은 우상(εἴδωλον)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정 욕구’와 ‘성과주의’입니다. 우리는 복음조차도 나의 스펙을 높여주는 도구로 사용하려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3절)고 고백했을 때, 고린도 사람들은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카리스마 넘치고 위풍당당한 지도자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καρδία)은 끊임없이 하나님보다 더 의지할 무언가를 찾아 헤맵니다. "내가 이만큼 유능하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안도감을 느끼는 우리에게, 바울의 ‘약함’은 패배주의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도덕적 ‘조언’으로 전락시켜, "조금 더 노력해서 멋진 기독교인이 되라"는 자기계발서 수준의 종교 생활에 안주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세상의 불안과 고독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3.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가장 영광스러운 실패’
바울은 이 딜레마의 해결책으로 단 하나만을 제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2절) 이것이 바로 복음(εὐαγγέλιον)입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십자가는 철저한 패배이자 미련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가장 낮은 곳, 가장 수치스러운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 그분은 참된 요셉이십니다. 형제들에게 팔려갔으나 오히려 그들을 구원하신 분입니다.
- 그분은 참된 다윗이십니다. 갑옷도 입지 않은 채 우리의 죄라는 거인을 대신 쓰러뜨리신 분입니다.
- 그분은 참된 요나이십니다. 우리를 풍랑 속에서 건지기 위해 스스로 바다에 던져지신 분입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이 지혜를 알지 못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8절). 하지만 하나님은 그 '약함'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실패한 그 자리, 우리가 죄로 인해 죽어야 했던 그 자리에 예수께서 대신 서셔서 완벽한 의를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은혜(χάρις)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Done) 일을 거저 받은 것입니다.
4. 십자가의 눈으로 세상을 재구성하기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더 강해지려고 노력하십시오"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십시오"가 정답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확정된 무죄 판결'을 받은 존귀한 자임을 깨달을 때, 더 이상 세상의 인정에 목매지 않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나 자신의 성취를 위한 삶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공적 책임인 정의(מִשְׁפָּט)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자원이 내 노력이 아닌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알기에, 소외된 이웃을 향해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의 스펙은 무엇이냐? 너의 힘은 어디에 있느냐?" 그때 우리는 바울처럼 대답할 수 있습니다. "나의 힘은 나의 약함 속에 머무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5. 예배로의 초대 및 종말론적 비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이 약하고 두렵고 떨리십니까? 괜찮습니다. 성령께서는 바로 그 낮은 마음의 자리에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게 하시는 지혜를 부어주십니다(10절).
우리는 이제 고난 중에서도 미소 지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부활로 이어졌듯, 우리의 현재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물을 회복하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고 가장 완전한 통치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오늘 하루도 내 힘이 아닌 주님의 은혜로 걷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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