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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2일 주일오전예배설교] 로마서 5장 12절-19절, 실패한 자리에서 시작된 승리 - 사순절 첫째 주일

[2026년 2월 22일 주일오전예배설교] 로마서 5장 12절-19절, 실패한 자리에서 시작된 승리 - 사순절 첫째 주일



서론: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사순절의 첫 번째 주일을 맞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그 너머에 있는 부활의 영광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최근 우리가 접하는 국제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고 위태롭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포화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강대국 리더들의 결정 하나하나가 전 세계의 경제와 안보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뉴스를 보며 우리는 종종 무력감을 느낍니다. "나 한 사람이 열심히 산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질까?"라는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평범한 시민들은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몇몇 지도자들의 오판과 탐욕으로 인해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고통받고, 난민이 발생하며, 물가가 치솟아 우리의 식탁까지 위협받는 현실을 목격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한 결과가 아닙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거대한 힘의 논리에 의해 내 삶이 휘둘리는 이 구조적 모순 앞에서 우리는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습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도 감람산에 앉아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시며 비슷한 아픔을 느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마 24: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미래에 대한 예언을 넘어,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이 필연적으로 겪게 될 고통의 구조를 꿰뚫어 보신 것입니다.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거대한 죄의 시스템, 그 속에서 신음하는 영혼들을 보시며 주님은 탄식하셨습니다.



본론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본문은 바로 이 문제의 근원을 파헤칩니다. 왜 세상은 끊임없이 전쟁과 고통 속에 있는가? 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고통받아야 하는가? 성경은 이것이 단순히 정치나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시조인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영적 원리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휩쓸려가는 절망의 흐름을 끊어내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대표자를 통해 시작되는 승리의 역사를 발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년 2월 22일 주일오전예배설교] 로마서 5장 12절-19절, 실패한 자리에서 시작된 승리 - 사순절 첫째 주일


대지 1. 실패의 연대성: 우리는 모두 아담이라는 배에 타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은 충격적인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 로마서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 말씀은 참 억울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아니,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나와 무슨 상관입니까? 내가 한 일도 아닌데 왜 내가 죄인입니까?"라고 항변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서론에서 말씀드린 국제 정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전쟁을 선포하면, 그 나라의 모든 청년은 원치 않아도 군복을 입고 전선으로 나가야 합니다. 지도자의 결정이 구성원 전체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 이것이 바로 '대표성의 원리(Principle of Representation)'입니다.

성경은 아담이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대표하는 머리였다고 말합니다. 아담이라는 선장이 운전하는 배가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 타고 있던 우리는, 우리가 선장실에 있지 않았더라도 함께 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운명 공동체인 것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은 인류의 유전자에 '죄'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심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미워할 줄 알고, 배우지 않아도 이기적으로 행동합니다. 어린아이들을 보십시오. "거짓말해라, 친구 걸 뺏어라"라고 가르치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죄의 증거입니다. 14절 말씀처럼,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사망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죄를 짓는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사순절 묵상의 시작입니다. "나는 그래도 꽤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도덕적 자만심을 내려놓고, "주여, 저는 아담 안에서 실패한 죄인입니다. 제 힘으로는 이 사망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정직한 절망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2026년 2월 22일 주일오전예배설교] 로마서 5장 12절-19절, 실패한 자리에서 시작된 승리 - 사순절 첫째 주일


대지 2. 은혜의 풍성함: 예수님은 아담의 실패를 덮고도 남습니다.

만약 성경이 "너희는 다 망했다"라고 끝난다면 그것은 복음(Good News)이 아니라 비보(Bad News)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15절부터 놀라운 반전을 선포합니다. 여기서 계속 반복되는 핵심 단어는 "더욱(Much More)"입니다.

  • 로마서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여러분, 이것을 주목하십시오. 아담이 저지른 죄의 파괴력도 엄청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은혜의 회복력은 그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하고, 압도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종종 죄책감에 시달리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죄가 너무 커서 용서받을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엉망으로 살았는데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실까?"

이것은 은혜를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마이너스 통장을 단순히 '0'으로 만드는 정도가 아닙니다. 빚을 다 갚아주실 뿐만 아니라, 갚을 수 없는 무한대의 자산을 우리 계좌에 입금해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아담은 우리에게 '사망'을 유산으로 물려주었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그것도 영원히 쇠하지 않는 생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심판은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의롭다 하심에 이릅니다.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사망이 왕 노릇 했다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순종으로 인해 은혜가 왕 노릇 합니다.

이것이 사순절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소망입니다. 여러분의 실패가 아무리 커도, 예수님의 성공이 더 큽니다. 여러분의 죄가 아무리 깊어도, 하나님의 은혜는 그보다 더 깊습니다. 우리가 실패한 바로 그 자리, 절망의 밑바닥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가장 강력한 빛을 발합니다.


대지 3. 승리의 전가: 이제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십시오.

마지막으로 17절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 로마서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여기서 '왕 노릇 한다(Reign)'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과거 아담 안에서 우리는 사망의 노예였습니다. 죽음이 두려워 벌벌 떨고, 죄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끌려다니는 비참한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인은 바뀌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의 신분은 '사망의 종'에서 '생명의 왕'으로 역전되었습니다.

왕 노릇 한다는 것은 미래에 천국에 가서 황금 면류관을 쓰고 누리는 호사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 이 땅, 이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와 팍팍한 현실 속에서 성도가 누려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세상은 돈이 왕 노릇 하고, 권력이 왕 노릇 합니다.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자라고 낙인찍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다릅니다. 우리는 환경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죄의 유혹이 찾아올 때 "나는 더 이상 너의 종이 아니다! 나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시다!"라고 선포하며 거절할 수 있는 권세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고난이 찾아와도 무너지지 않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도리어 축복하고 용서할 수 있는 넉넉함. 이것이 바로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순종(19절)이 나의 의가 되었기에, 우리는 더 이상 정죄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당당하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야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두 사람의 이야기로 요약됩니다. 첫 사람 아담은 좋은 환경인 에덴에서도 불순종하여 우리를 실패의 자리로 끌고 갔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최악의 환경인 십자가 위에서도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를 승리의 자리로 옮겨 놓으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누구 안에 있습니까? 여전히 아담의 옛 본성을 따라 핑계 대고, 원망하고, 절망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의지하며 생명의 능력을 맛보고 계십니까?

이 사순절 기간, 우리의 시선을 나의 연약함에서 돌려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바라봅시다. 세상의 소란스러운 뉴스나 나의 초라한 현실이 여러분을 규정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하신 약속이 바로 여러분의 것입니다.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십시오. 넘어진 자리에서 예수님의 손을 잡고 일어나십시오. 사망이 왕 노릇 하던 옛 삶을 청산하고, 이제 예수 생명으로 가정과 직장과 세상 속에서 거룩한 왕 노릇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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