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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9일 주일 예배 설교] 누가복음 24장 13절-35절, 내 인생의 엠마오 - 부활절 세 번째 주일

[2026년 4월 19일 주일 예배 설교] 누가복음 24장 13절-35절, 내 인생의 엠마오 - 부활절 세 번째 주일



서론: 공감의 시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창밖으로는 완연한 봄기운이 가득한데,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는 여전히 시린 겨울바람이 불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과 조용히 차를 나누며 대화하다 보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정서가 있습니다. 바로 ‘번아웃’과 ‘무력감’입니다. 우리는 모두 참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신앙생활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달려왔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 에너지가 방전된 것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영적인 감각마저 무뎌져 버린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애써왔나" 하는 깊은 허탈감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두 제자의 발걸음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라는 작은 마을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어깨는 무겁게 축 처져 있었고, 얼굴에는 슬픈 빛이 가득했습니다. 모든 희망을 걸었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허망하게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철저한 실패감과 영적인 번아웃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엠마오로 가는 길은, 오늘날 지치고 상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우리들의 인생길과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절망으로 점철된 이 길 위에서 놀라운 반전이 시작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지친 마음을 다독이시며 다가오시는 주님의 따뜻한 음성을 함께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마음 발견

본문 15절을 보면, 두 제자가 서로 이야기하며 슬픔에 잠겨 걸어갈 때, 예수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눈이 가리어져 그분이 예수님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15절과 16절을 보십시오.

  • 누가복음 24:15-16,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우리가 영적으로 깊은 침체에 빠지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이 바로 '시야가 좁아지는 것'입니다. 내 고통이 너무 커서 곁에 계신 주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너무나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 갑자기 나타나셔서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이 도망가느냐!"라고 다그치시거나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조용히 곁에 다가오셔서, 그들의 느리고 지친 걸음걸이에 당신의 보폭을 맞추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쏟아내는 불평과 절망의 이야기를 묵묵히 다 들어주십니다. 의심하는 자까지 예수님은 품으시고 동행하신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가장 밝고 빛나는 면입니다. 우리가 무력감에 빠져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지 못할 때조차,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친히 찾아와 함께 걸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둘째, 복음 안에서의 새로운 관점

제자들의 하소연을 다 들으신 후, 예수님은 비로소 입을 여십니다. 그리고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27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 누가복음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최근 서재에서 책들을 정리하며 노트를 적다가, 독일의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책에서 본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라고 명명하며, 끊임없이 성과를 요구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소진시키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우리는 실패를 '끝'이라고 해석하는 세상의 렌즈를 끼고 살아갑니다. 제자들 역시 십자가 사건을 '완전한 실패'로만 해석했기 때문에 절망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경의 말씀을 통해 그들의 인생을, 그리고 십자가의 고난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해 주셨습니다. 고난이 끝이 아니라 부활로 향하는 영광의 통로였음을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스며들 때, 우리의 무력감은 새로운 의미를 입게 됩니다. 내 실패와 눈물조차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크신 이야기 속에 있음을 깨달을 때, 굳어있던 우리의 마음은 본문의 제자들처럼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2026년 4월 19일 주일 예배 설교] 누가복음 24장 13절-35절, 내 인생의 엠마오 - 부활절 세 번째 주일


셋째, 일상에서 누리는 작은 승리

마을에 도착할 즈음, 날이 저물어 제자들은 예수님께 함께 머물기를 강권합니다. 그리고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십니다. 바로 그 순간,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 주님인 줄 알아보게 됩니다. 우리 함께 31절을 읽겠습니다.

  • 누가복음 24: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예수님은 하늘이 열리고 불이 떨어지는 거창하고 압도적인 기적으로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밥을 먹고, 떡을 떼는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식탁의 자리에서 영적인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때로 우리는 영적인 회복을 위해 산을 옮길 만한 대단한 결단이나 특별한 집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압박합니다. 하지만 신앙의 회복탄력성은 아주 작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주님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바꾸려 하거나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천천히, 한 번에 하나씩 주님과 동행하는 일상의 작은 승리들을 맛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밥을 먹는 식탁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평범한 하루를 주님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부활 신앙입니다.



적용: 작지만 확실한 순종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간 우리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딱 한 가지만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거창한 기도 시간이나 엄청난 헌신을 목표로 세우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하루 중 단 한 번의 식사 시간이라도, 허겁지겁 서둘러 드시지 말고 천천히 여유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밥 한 숟가락을 뜨기 전, 마음속으로 짧게 이렇게 고백해 보는 것입니다. "주님, 오늘도 제 인생의 엠마오 길에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은 식탁의 자리에도 주님이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이렇게 조용히 호흡을 고르고 주님을 의식하는 단 1분의 시간, 그 느릿하고 여유로운 한 걸음의 실천이 우리의 메마른 일상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고 얼어붙은 영혼을 회복시키는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결론: 소망의 선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디베랴 호숫가로 제자들을 찾아가셨던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죄책감과 무력감에 빠져 옛 그물질을 하던 베드로에게 찾아가셨을 때도, 주님은 다그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밤새 추위와 허기에 지친 제자들을 위해 숯불을 피우시고 떡과 생선을 구워 아침을 먹이셨습니다. 따뜻한 아침 식사로 그들의 주린 배와 얼어붙은 마음을 먼저 녹여주신 후에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며 부드럽게 사명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깊이 체휼하시고, 우리가 스스로 일어설 힘이 없을 때조차 우리의 보폭에 맞추어 묵묵히 함께 걸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걷고 있는 그 길이 아무리 외롭고 고단해 보여도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지금 여러분의 곁에서 따뜻한 온기로 함께 걷고 계십니다. 그 크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정의 약속을 신뢰하며, 이번 한 주간도 서두르지 않고 평안히, 주님과 함께 걷는 은혜로운 나날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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