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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31일 주일 예배 설교] 마태복음 28장 16절-20절, 세상의 소음을 넘어, 영원한 평안의 춤으로 - 삼위일체주일

[2026년 5월 31일 주일 예배 설교] 마태복음 28장 16절-20절, 세상의 소음을 넘어, 영원한 평안의 춤으로 - 삼위일체주일



서론: 공감의 시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세상의 분주한 소음을 뒤로하고, 이 거룩한 자리에 참 잘 오셨습니다. 내 영혼을 따뜻하게 안아주시는 주님의 품으로 나아오신 여러분 모두를 온 맘 다해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예배의 자리에 앉으시면서, 문득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마음이 무겁지는 않으셨나요? 쉼 없이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에 발맞추느라 지친 얼굴을 보며,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하는 깊은 피로감과 무력감이 우리 마음을 짓누르곤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느새 메마르고, 영적인 에너지는 바닥을 드러내어 한 걸음도 내딛기 힘든 순간이 찾아옵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은 막막한 순간,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까요?

오늘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삼위일체주일입니다. 바로 그 지치고 연약한 우리를 향해, 조건 없는 평안과 사랑의 손길을 내미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따뜻한 초대장이 열리는 날입니다.

이 시간, 어깨를 짓누르던 세상의 무거운 짐은 잠시 내려놓으십시오. 우리를 따뜻하게 품으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평안의 걸음을 천천히 내딛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론: 하나님의 깊은 사랑 속으로


1. 하나님의 마음 발견

오늘 본문 속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고단한 일상에 지쳐 흔들리는 우리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지금 제자들이 서 있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영광스럽고 가슴 벅찬 갈릴리의 산 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제자들의 모습을 참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마태복음 28: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사랑하는 여러분, 제자들이 누구입니까? 무려 3년 동안 주님과 동고동락하며 수많은 기적을 눈앞에서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두려움과 의심이 남아 있었습니다. 참으로 연약하고 부족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다그치지 않으십니다. “왜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라고 책망하지도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서툰 믿음과 상처 입은 마음, 흔들리는 의심을 있는 그대로 안아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가장 강하신 분인 줄 믿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낙심한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깊은 위로의 자리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완전함을 보시고 찾아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함 그 자체를 아시고, 그것을 당신의 사랑으로 넉넉히 채워주시는 따뜻한 분이십니다.


2. 복음 안에서의 새로운 관점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는 그의 저서 《순전한 기독교》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아주 아름다운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를 ‘영원한 사랑의 관계적 춤’이라고 묘사한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홀로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으십니다. 끊임없이 서로를 존중하고 깊이 사랑하시며, 온전한 사귐 속에서 영원한 평안과 기쁨의 춤을 추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복음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그 완벽하고 따스한 사랑의 공동체 속에, 아무런 자격도 없는 연약한 우리를 초대해 주셨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내 삶의 결핍과 상처, 그리고 실패만을 바라보던 좁은 시선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나를 이 거룩하고 풍성한 사랑의 사귐으로 초대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넓은 품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의 시선이 주님께 고정될 때, 우리의 모든 아픔은 복음 안에서 완전히 새롭게 해석될 줄 믿습니다.

이제 나의 약함은 인생의 실패를 증명하는 낙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강하심과 풍성한 은혜가 머물며 일하시는 가장 복된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3. 일상에서 누리는 작은 승리

이 놀라운 사랑과 부활의 기쁨을 깨달은 우리는, 이제 고단한 일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시며, 가슴 벅찬 약속을 주셨습니다.

  •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완벽해지라고 다그칩니다. 남들보다 한 걸음이라도 더 빨리 달려가 성공의 자리에 오르라고 우리를 사정없이 몰아세웁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과 함께 걷는 믿음의 여정은 결코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일상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는 비결은 거창하고 위대한 성취에 있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항상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데 있습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오늘 내게 주어진 작은 삶의 자리에 감사하는 데서 우리의 평안은 시작됩니다.

내 곁에 있는 가족과 이웃에게 따뜻한 눈길을 한 번 더 건네는 것,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나누는 것, 헝클어진 마음을 차분히 정리하는 것, 그것이 일상에서 누리는 위대한 승리입니다. 우리의 삶을 바르게 정돈해 나가는 믿음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적용: 작지만 확실한 순종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간 우리가 삶의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딱 한 가지’ 작은 순종의 걸음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한꺼번에 삶을 통째로 바꾸려 애쓰지 마십시오. 그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혹은 거울을 보며 조용히 마음속으로 이렇게 고백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참 연약하지만, 가장 강하신 하나님이 오늘 나의 삶과 항상 함께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이 짧은 감사의 고백 하나가 매일 아침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빚어갈 것입니다.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던 무력감의 안개를 거두어 주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안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줄 믿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이 작은 고백으로 주님 손을 꼭 잡고 평안하게 걸어가 보시기를 권면합니다.



결론: 소망의 선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과 이별을 앞두고 두려워 떨던 제자들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약속의 말씀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를 영원한 평안과 기쁨의 자리로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의 발걸음은 때로 너무나 느리고 연약하여 넘어지고 서툴지라도,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겠다”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 가득한 초대장에 기쁨과 감사로 응답하십시오. 그리하여 이번 한 주간도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영적인 복락과 소망을 풍성히 누리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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