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공감의 시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주님의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 조용히 내려앉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참 바쁜 시대를 살아갑니다. 하루를 열심히 살았는데도 마음 한쪽에는 이상하게 허전함이 남습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나는 충분하지 않은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몸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오래전부터 지쳐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어떤 분은 관계 때문에 지쳤고, 어떤 분은 반복되는 책임 때문에 지쳤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느낍니다. 또 어떤 분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조용히 버티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너무 오래 견디다 보니 마음의 숨이 가빠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이 어떻게 다가오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사람만 부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무너진 자리, 부끄러운 자리, 손댈 수 없는 아픔의 자리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은 무거운 명령만이 아닙니다.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시는 따뜻한 음성입니다.
본론
1대지: 하나님의 마음 발견 — 예수님은 멀어진 사람을 먼저 찾아오십니다
마태복음 9장 9절에서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보십니다.
- 마태복음 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당시 세리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로마의 세금을 거두며 동족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마태는 돈을 벌고 있었지만,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에 갇혀 살았을 것입니다. 이름은 불렸지만 사랑으로 불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의 과거보다 마태의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세리라고 불렀지만, 예수님은 그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이 짧은 말씀 안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너는 네 실패보다 크다. 너는 사람들의 평가보다 귀하다. 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복음의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괜찮아 보일 때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스스로를 포기하고 싶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부르십니다. 헨리 나우웬은 『상처 입은 치유자』에서 상처를 감추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통해 타인을 품는 사람이 진정한 치유의 통로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상처를 버려야 할 폐기물로 보지 않으십니다. 은혜가 스며들 자리로 보십니다.
마태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태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정리한 뒤 따른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부르심을 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믿음은 때로 거창한 결심보다 작은 일어섬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게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완벽해진 뒤가 아니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은 지금, 한 걸음 일어서는 것입니다.
2대지: 복음 안에서의 새로운 관점 — 예수님은 죄인을 정죄하지 않고 식탁으로 초대하십니다
예수님은 마태를 부르신 뒤 그의 집에서 식사하십니다. 그 자리에는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묻습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그들의 질문 속에는 경계심이 있습니다. 거룩은 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죄인과 멀리 있어야 깨끗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관점을 보여주십니다. 12절 말씀입니다.
- 마태복음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예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가 얼마나 깊은 병인지 아셨습니다. 그래서 정죄보다 치유를 택하셨습니다. 밀어내기보다 가까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거룩은 사람을 피하는 거룩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거룩입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을 자기검열의 도구로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약할까?” 그러나 복음은 우리를 끝없이 몰아붙이는 채찍이 아닙니다. 복음은 병든 마음을 돌보시는 주님의 손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차가운 종교적 완벽함이 아니라, 긍휼을 받은 사람이 다시 긍휼을 흘려보내는 삶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 한 관리가 죽은 딸을 살려 달라고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집니다. 한 사람은 공개적으로 나아왔고, 한 사람은 조용히 뒤에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방식은 달랐지만 둘 다 예수님께 소망을 걸었습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 모두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 나아오는 길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크게 울며 나아오고, 어떤 이는 아무 말 없이 옷자락만 붙잡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작은 믿음의 떨림도 놓치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새 관점을 얻습니다. 믿음은 강한 사람의 자격증이 아닙니다. 믿음은 약한 사람이 주님께 손을 내미는 용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믿음이 모든 것을 이긴다. 이것은 내 의지가 모든 것을 이긴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께 붙든 믿음, 주님의 긍휼을 신뢰하는 믿음이 절망과 수치와 두려움을 이긴다는 뜻입니다.
3대지: 일상에서 누리는 작은 승리 —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오늘의 작은 순종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을 따라간 마태의 첫 순종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그는 일어났습니다. 혈루증 여인의 믿음도 아주 작아 보였습니다. 그는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죽은 딸을 둔 아버지의 믿음도 완전한 설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자기 자리에서 예수님께 방향을 틀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도 그렇습니다. 충성은 늘 큰 희생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늘 맡겨진 자리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작은 선택이 충성입니다. 소망은 현실을 모르는 낙관이 아닙니다. 현실을 알지만 주님이 더 크심을 신뢰하는 마음입니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드는 것입니다. 인내는 아무 느낌 없이 버티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으며 오늘의 한 걸음을 걷는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신앙의 길을 “한 방향으로 오래 순종하는 삶”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참 좋은 말입니다. 신앙은 번쩍이는 순간만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매일의 작고 조용한 순종이 우리 영혼의 길을 만듭니다. 아침에 눈을 뜨며 “주님, 오늘도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 상처 준 사람을 위해 당장 큰 사랑은 못 해도 미움의 말을 멈추는 것, 지친 가족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는 것,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소녀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예수님은 생명을 보셨습니다. 우리가 끝이라고 말하는 자리에서도 주님은 시작을 준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작은 순종을 가볍게 여기지 맙시다. 주님께 드린 작은 믿음의 손길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 손을 붙드시고 우리를 다시 일으키십니다.
적용: 작지만 확실한 순종
이번 한 주간, 딱 한 가지만 해봅시다. 하루에 한 번, 조용한 자리에서 손을 펴고 이렇게 기도해봅시다.
“예수님, 오늘 제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제 연약함보다 주님의 긍휼을 더 믿게 해주세요.”
길게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1분이어도 좋습니다. 출근길이어도 좋고, 설거지하다가도 좋고, 잠들기 전이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의 방향을 예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마태가 세관에서 일어났듯이, 여인이 옷자락을 만졌듯이, 우리도 오늘의 자리에서 작은 믿음의 손을 내밀어봅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번 주에 한 사람에게 긍휼의 말을 건네면 좋겠습니다. “괜찮으세요?”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이런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예수님의 식탁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소망의 선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길을 가시다가 마태를 부르셨고, 병든 여인을 고치셨고, 죽은 소녀를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은 멈춰 서실 줄 아는 주님이십니다. 바쁜 길 위에서도 상처 입은 사람을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은 지친 영혼을 향한 주님의 품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더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 아니라, 참된 주님 곁에서 짐의 의미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주님은 완성된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부르신 사람을 완성해 가십니다. 우리의 충성이 작아 보여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소망이 희미해 보여도 주님은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용기가 떨리는 손 같아도 주님은 그 손을 붙드십니다.
그러므로 이번 한 주도 예수님을 따라 걸어갑시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걸어갑시다. 주님의 긍휼이 우리를 품고, 주님의 생명이 우리를 일으키며,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일상을 밝힐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 위에 위로가 있고, 소망이 있고, 다시 살아나는 은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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