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실 속의 갈등과 문제: 우리를 지치게 하는 ‘조급함’이라는 그늘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사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어린 생명들을 가슴에 품고 눈물로 기도의 자리를 지키시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복하고 위로합니다. 20여 년간 목회의 길을 걸으며 저 역시 교육 부서의 현장을 늘 지켜보아 왔습니다. 주중에는 치열한 삶을 살다가, 주일이면 어김없이 아침 일찍 나와 아이들을 맞이하는 여러분의 헌신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한편에는 늘 남모르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과 영적인 침체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초고속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음식이 배달되고, 몇 초 만에 전 세계의 정보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은 은연중에 우리의 사역 현장에도 스며들었습니다. 우리는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곧바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내 반 아이가 예배 시간에 태도가 전보다 좋아지기를, 내가 전한 공과 말씀에 즉각 눈물을 흘리며 반응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아무리 열심히 공과를 준비하고 기도로 눈물을 흘려도, 아이들은 여전히 예배 시간에 속을 썩이고 스마트폰만 바라보기 일쑤입니다. 변화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교사들은 깊은 무력감에 빠집니다. "내 노력이 부족한 걸까? 내가 능력이 없어서 아이들이 변화되지 않는 걸까?" 결국 이러한 조급함은 우리 안에 영적인 번아웃을 가져오고, 사역의 기쁨을 앗아가 버립니다. 내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2. 본문의 위기와 갈등: 인간의 연약함이 만들어낸 분열
오늘 본문이 기록된 고린도 교회 역시 바로 이와 유사한 문제로 깊은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영적으로 매우 미숙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성장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들의 이름에 집착했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속했다",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다" 하며 서로 편을 가르고 다투었습니다.
바울은 이 교회의 영적인 위기와 갈등의 원인을 파헤치며, 3장 3절에서 그들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서 '분쟁'으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ἔρις(에리스)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의견이 다른 것을 넘어, 자신의 의를 증명하려다 생긴 '당파적 싸움'과 '추악한 갈등'을 뜻합니다. 왜 이런 분쟁이 일어났을까요? 그들은 교회의 성장과 영적 성숙이 인간 지도자의 탁월함에 달려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개척 능력, 아볼로의 화려한 수사학과 웅변술, 게바 베드로의 사도적 혈통에 마음을 빼앗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영적인 성장을 인간의 열심과 탁월함의 결과물로 바라보는 순간, 우리 안에는 ἔρις(에리스), 즉 비교와 시기, 그리고 절망이 찾아옵니다. 내가 전하는 말씀이 아볼로처럼 유창하지 못해서, 내 성품이 바울처럼 대단하지 못해서 내 반 아이들이 자라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처럼 인간의 수단과 방법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본질을 잃어버린 채, 오직 눈에 보이는 인간의 노력만을 전부로 여기는 연약함이 바로 고린도 교회의 위기이자, 오늘날 우리 교사들이 겪는 영적 갈등의 실체입니다.
3. 본문 속에 나타난 하나님과 문제의 해결: 오직 자라게 하시는 주권적 은혜
바울은 이 팽팽한 갈등과 절망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시선을 인간에게서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려놓습니다. 6절과 7절을 통해 바울은 위대한 반전의 진리를 선포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인간은 겨우 '심고 물을 주는' 제한적인 존재일 뿐, 생명을 잉태하고 그것을 키워내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선언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앓고 있던 분쟁의 문제는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할 때만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구약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자라게 하심'은 창세기부터 도도히 흘러온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적 성취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번성하리라" 약속하시고, 광야의 이스라엘을 신실하게 기르신 신명기의 그 신실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자라나게 하셨나니"의 헬라어 원어는 αὐξάνω(아욱사노)입니다. 특히 본문에서 이 단어는 미완료 과거 시제인 ηὔξανεν(에욱사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헬라어에서 미완료 시제는 과거에 단 한 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과거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자라게 하고 계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낙심하고 있던 그 순간에도, 아이가 변하지 않는 것 같아 눈물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던 그 밤에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혼의 깊은 토양 속에서 ηὔξανεν(에욱사넨), 즉 쉬지 않고 생명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교사 여러분, 성장은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성장은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이며 은혜의 신비입니다. 우리의 어설픈 심음과 부족한 물 주기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신실하심으로 그 씨앗을 돌보고 계십니다. 이 진리가 오늘 우리의 무거운 어깨에서 짐을 벗겨 주시는 하나님의 해답입니다.
4. 복음 제시와 대조: 십자가의 보혈로 증명된 온전한 사랑
사랑하는 교사 여러분, 우리는 완벽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지혜는 짧고, 우리의 인내심은 쉽게 바닥이 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연약함과 완벽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나 선명하게 대조됩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마음 밭에 작은 복음의 씨앗을 겨우 심고 돌아서지만,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명 자체를 십자가라는 거친 땅에 온전히 심으셨습니다. 우리는 메마른 손으로 물을 주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고귀한 붉은 보혈과 생수의 강 같은 성령을 우리 아이들의 영혼에 아낌없이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내가 부족하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복음의 능력은 교사가 나타내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물과 피를 쏟으시며 "내가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여러분이 가르치는 그 아이를 위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눈물로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문제를 해결해 나갈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내 손에 쥔 결과를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주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한 선배 교사님이 계셨습니다. 몇 년 동안 아무리 말을 걸어도 마음을 열지 않고 예배를 방해하던 한 학생 때문에 사표를 내려 하셨습니다. 마지막 주일, 교사님은 그저 힘없이 아이를 안아주며 "선생님이 많이 부족해서 미안해, 하지만 예수님은 너를 정말 사랑하신단다"라고 속삭였습니다. 그 후 10년이 지나 그 아이는 목회자가 되어 그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아이의 영혼을 자라게 한 것은 교사의 대단한 프로그램이 아니었습니다. 교사의 무력함 속에서 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신 보혈의 능력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눈물로 씨를 뿌릴 뿐이며, 열매는 주님의 것입니다!
5. 결론: 기쁨으로 씨를 뿌리는 동역자의 축복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 있던 조급함과 두려움의 안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깨끗이 걷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오늘 당장 눈앞의 결과를 보지 못할지라도,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의 영혼 속에 심긴 복음의 씨앗을 반드시 싹트게 하실 것입니다. 언젠가 그 아이들이 자라나 하나님의 교회의 기둥이 되고, 세상을 치유하는 복음의 세대가 될 날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시다.
이제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기쁨으로 교사의 자리를 향해 걸어가십시다. 결과에 대한 부담감은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 드립시다. 이번 한 주간, 맡겨진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오직 신실하게 영적인 물을 주는 기도의 무릎을 꿇으십시다. 우리의 사명은 결과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랑으로 심고 물을 주는 것까지입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발맞추어 걷는 기쁨, 비록 지금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릴지라도 머지않아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거두어 주님 품에 안겨드릴 그 영광스러운 감격을 기대하십시오. 자라게 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헌신을 다짐하는 여러분의 모든 발걸음 위에, 그리고 여러분의 반 아이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안심하십시오. 하나님이 반드시 자라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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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내가 주인 삼은 [2026년 7월 5일 주일 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3장 6절-7절,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 교사헌신예배 설교](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img/b/R29vZ2xl/AVvXsEiBXvGTxofI1mInPQ-iN-2Dq16BytwtpT9GhHXWfJp9zy67EjwzB4U_uh1q8p3NLl-_-NJBERw3Jq9wTjmkO7Wcw9V_JwyHmW_7cIHZjw17Z4V8nZfCkJsIBhUeZGcvP72_5gv4RySqgk8bX_2Bo33AiqmqeHTH9rVyFaiTk_S7RhCsioErPEq0BUy5isMC/w640-h450/G%20%EB%82%B4%EA%B0%80%20%EC%A3%BC%EC%9D%B8%20%EC%82%BC%EC%9D%80.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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