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2026년 7월 5일 주일 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3장 6절-7절,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 교사헌신예배 설교

[2026년 7월 5일 주일 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3장 6절-7절,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 교사헌신예배 설교



1. 현실 속의 갈등과 문제: 우리를 지치게 하는 ‘조급함’이라는 그늘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사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어린 생명들을 가슴에 품고 눈물로 기도의 자리를 지키시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복하고 위로합니다. 20여 년간 목회의 길을 걸으며 저 역시 교육 부서의 현장을 늘 지켜보아 왔습니다. 주중에는 치열한 삶을 살다가, 주일이면 어김없이 아침 일찍 나와 아이들을 맞이하는 여러분의 헌신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한편에는 늘 남모르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과 영적인 침체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초고속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음식이 배달되고, 몇 초 만에 전 세계의 정보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은 은연중에 우리의 사역 현장에도 스며들었습니다. 우리는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곧바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내 반 아이가 예배 시간에 태도가 전보다 좋아지기를, 내가 전한 공과 말씀에 즉각 눈물을 흘리며 반응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아무리 열심히 공과를 준비하고 기도로 눈물을 흘려도, 아이들은 여전히 예배 시간에 속을 썩이고 스마트폰만 바라보기 일쑤입니다. 변화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교사들은 깊은 무력감에 빠집니다. "내 노력이 부족한 걸까? 내가 능력이 없어서 아이들이 변화되지 않는 걸까?" 결국 이러한 조급함은 우리 안에 영적인 번아웃을 가져오고, 사역의 기쁨을 앗아가 버립니다. 내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2. 본문의 위기와 갈등: 인간의 연약함이 만들어낸 분열


오늘 본문이 기록된 고린도 교회 역시 바로 이와 유사한 문제로 깊은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영적으로 매우 미숙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성장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들의 이름에 집착했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속했다",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다" 하며 서로 편을 가르고 다투었습니다.

바울은 이 교회의 영적인 위기와 갈등의 원인을 파헤치며, 3장 3절에서 그들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서 '분쟁'으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ἔρις(에리스)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의견이 다른 것을 넘어, 자신의 의를 증명하려다 생긴 '당파적 싸움'과 '추악한 갈등'을 뜻합니다. 왜 이런 분쟁이 일어났을까요? 그들은 교회의 성장과 영적 성숙이 인간 지도자의 탁월함에 달려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개척 능력, 아볼로의 화려한 수사학과 웅변술, 게바 베드로의 사도적 혈통에 마음을 빼앗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영적인 성장을 인간의 열심과 탁월함의 결과물로 바라보는 순간, 우리 안에는 ἔρις(에리스), 즉 비교와 시기, 그리고 절망이 찾아옵니다. 내가 전하는 말씀이 아볼로처럼 유창하지 못해서, 내 성품이 바울처럼 대단하지 못해서 내 반 아이들이 자라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처럼 인간의 수단과 방법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본질을 잃어버린 채, 오직 눈에 보이는 인간의 노력만을 전부로 여기는 연약함이 바로 고린도 교회의 위기이자, 오늘날 우리 교사들이 겪는 영적 갈등의 실체입니다.


[2026년 7월 5일 주일 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3장 6절-7절,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 교사헌신예배 설교



3. 본문 속에 나타난 하나님과 문제의 해결: 오직 자라게 하시는 주권적 은혜


바울은 이 팽팽한 갈등과 절망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시선을 인간에게서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려놓습니다. 6절과 7절을 통해 바울은 위대한 반전의 진리를 선포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인간은 겨우 '심고 물을 주는' 제한적인 존재일 뿐, 생명을 잉태하고 그것을 키워내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선언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앓고 있던 분쟁의 문제는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할 때만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구약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자라게 하심'은 창세기부터 도도히 흘러온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적 성취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번성하리라" 약속하시고, 광야의 이스라엘을 신실하게 기르신 신명기의 그 신실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자라나게 하셨나니"의 헬라어 원어는 αὐξάνω(아욱사노)입니다. 특히 본문에서 이 단어는 미완료 과거 시제인 ηὔξανεν(에욱사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헬라어에서 미완료 시제는 과거에 단 한 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과거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자라게 하고 계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낙심하고 있던 그 순간에도, 아이가 변하지 않는 것 같아 눈물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던 그 밤에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혼의 깊은 토양 속에서 ηὔξανεν(에욱사넨), 즉 쉬지 않고 생명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교사 여러분, 성장은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성장은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이며 은혜의 신비입니다. 우리의 어설픈 심음과 부족한 물 주기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신실하심으로 그 씨앗을 돌보고 계십니다. 이 진리가 오늘 우리의 무거운 어깨에서 짐을 벗겨 주시는 하나님의 해답입니다.



4. 복음 제시와 대조: 십자가의 보혈로 증명된 온전한 사랑


사랑하는 교사 여러분, 우리는 완벽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지혜는 짧고, 우리의 인내심은 쉽게 바닥이 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연약함과 완벽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나 선명하게 대조됩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마음 밭에 작은 복음의 씨앗을 겨우 심고 돌아서지만,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명 자체를 십자가라는 거친 땅에 온전히 심으셨습니다. 우리는 메마른 손으로 물을 주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고귀한 붉은 보혈과 생수의 강 같은 성령을 우리 아이들의 영혼에 아낌없이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내가 부족하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복음의 능력은 교사가 나타내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물과 피를 쏟으시며 "내가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여러분이 가르치는 그 아이를 위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눈물로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문제를 해결해 나갈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내 손에 쥔 결과를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주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한 선배 교사님이 계셨습니다. 몇 년 동안 아무리 말을 걸어도 마음을 열지 않고 예배를 방해하던 한 학생 때문에 사표를 내려 하셨습니다. 마지막 주일, 교사님은 그저 힘없이 아이를 안아주며 "선생님이 많이 부족해서 미안해, 하지만 예수님은 너를 정말 사랑하신단다"라고 속삭였습니다. 그 후 10년이 지나 그 아이는 목회자가 되어 그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아이의 영혼을 자라게 한 것은 교사의 대단한 프로그램이 아니었습니다. 교사의 무력함 속에서 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신 보혈의 능력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눈물로 씨를 뿌릴 뿐이며, 열매는 주님의 것입니다!


[2026년 7월 5일 주일 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3장 6절-7절,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 교사헌신예배 설교



5. 결론: 기쁨으로 씨를 뿌리는 동역자의 축복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 있던 조급함과 두려움의 안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깨끗이 걷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오늘 당장 눈앞의 결과를 보지 못할지라도,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의 영혼 속에 심긴 복음의 씨앗을 반드시 싹트게 하실 것입니다. 언젠가 그 아이들이 자라나 하나님의 교회의 기둥이 되고, 세상을 치유하는 복음의 세대가 될 날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시다.

이제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기쁨으로 교사의 자리를 향해 걸어가십시다. 결과에 대한 부담감은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 드립시다. 이번 한 주간, 맡겨진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오직 신실하게 영적인 물을 주는 기도의 무릎을 꿇으십시다. 우리의 사명은 결과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랑으로 심고 물을 주는 것까지입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발맞추어 걷는 기쁨, 비록 지금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릴지라도 머지않아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거두어 주님 품에 안겨드릴 그 영광스러운 감격을 기대하십시오. 자라게 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헌신을 다짐하는 여러분의 모든 발걸음 위에, 그리고 여러분의 반 아이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안심하십시오. 하나님이 반드시 자라게 하십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11월 9일 절기 본문 설교] 마태복음 11장 28절-30절, 세상의 짐, 예수의 멍에

11월 9일 주일의 절기 본문인 마태복음 11장 28-30절 설교. 신앙생활에 지쳤습니까? 왜 우리는 피곤할까요?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라고 부르십니다. 이 설교는 율법주의와 세상의 짐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쉼을 얻는 비결을 확인합니다. 주님의 '쉽고 가벼운 멍에'가 무엇인지 배우고 영적 회복을 경험하십시오. 마태복음 11장 28절-30절, 세상의 짐, 예수의 멍에 서론: 현대인의 피로, 신앙인의 탈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번아웃(Burnout)', 즉 '소진'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단순히 피곤한(Tired) 상태를 넘어, 마치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어 다시는 충전될 수 없을 것 같은, 영혼까지 탈탈 털린 듯한 극심한 탈진 상태를 말합니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 올라가라고 요구합니다. 직장에서는 성과를 내야 하고, 가정에서는 좋은 부모와 배우자가 되어야 하며,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감정을 소모해야 합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쳇바퀴 위에서 우리는 모두 지쳐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깝고 심각한 문제는, 우리의 마지막 피난처가 되어야 할 신앙생활조차 우리에게 '쉼'이 아니라 또 다른 '무거운 짐'이 될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기쁨과 설렘이 아니라 '오늘도 가야 하는구나'하는 무거운 의무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맡은 봉사와 헌신이, 처음에는 감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기쁨 없이 그저 습관처럼, 혹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억지로 감당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마음속으로는 "더 열심히 해야 해", "더 완벽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해", "기도 시간을 채워야 해", "저 사람만큼은 해야지"라는 율법주의적인 압박감에 스스로를 몰아붙입니다. 남들과...

[11월 16일 추수감사주일 설교]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23절, 새 아침을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삶의 잿더미, 가장 깊은 절망 속에서 드리는 희망의 노래. 예레미야애가 3장 22-23절을 통해,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낄 때에도 결코 끝나지 않는 하나님의 인자(חסד, 헤세드)와 긍휼(רחמים, 라하밈)을 발견합니다. 아침마다 새로운 주의 성실하심이 십자가 안에서 어떻게 우리의 '새 아침'이 되는지 선포하는 설교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23절, 새 아침을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성경 본문 예레미야애가 3:22-23,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서론: 끝이라고 느낄 때 성도 여러분, 혹시 "이제 정말 끝이다"라고 느껴본 적 있으십니까?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잿더미 위에 주저앉아,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을 느껴본 적 있으십니까? 어쩌면 그것은 끔찍한 사고나 질병의 진단일 수도 있고, 처절한 사업의 실패나 실직의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으로 관계가 파탄 났을 때일 수도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죄의 굴레 속에서 "나는 안 되는구나" 좌절할 때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예레미야애가는,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이 무너진 '잿더미' 위에서 쓰인 슬픔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불탔고, 나라는 망했으며, 백성들은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참혹한 현실 속에서 3장 1절부터 20절까지, 칠흑 같은 어둠 속의 고통을 토해냅니다. " 그가 나를 이끌어 어둠 속에서 걸어가게 하시고 "(3:2), " 내 영혼이 평강에서 멀리 떠났으니 내가 복을 내어 버렸으며 "(3:17)라고 절규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마주하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우리의 진짜 문제는 고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끝났...

[11월 2일 절기 본문 설교] 하박국 1장 1절-4절, 2장 1절-4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고난 속 "왜?"라는 질문을 가지고 괴로워하며 하나님께 원망하고 계십니까?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합 2:4)는 하박국의 핵심 메시지를 심층 분석하였습니다. 하박국 1-2장의 탄식과 하나님의 응답, '에무나'의 참된 의미, 신약의 적용까지 정리하였습니다. 하박국 1장 1절-4절, 2장 1절-4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박국 1-2장 연구 5가지 핵심 내용 핵심 1: 선지자의 정직한 탄식 (합 1:1-4) 하박국 1장 1-4절은 선지자의 고뇌에 찬 부르짖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유다 사회에 만연한 강포(하마스), 죄악, 불의를 목도하며 고통받습니다. 율법이 마비되고 정의가 왜곡되는 현실 속에서, 그는 "어느 때까지리이까", "어찌하여"라고 외치며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정직하게 탄원합니다. 이는 고난의 현실 앞에서 신앙인이 겪는 실존적 고뇌와 신정론적 씨름을 보여줍니다. 핵심 2: 파수꾼의 결단과 기다림 (합 2:1-3) 선지자는 탄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2장 1절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듣기 위해 의지적으로 '파수하는 곳'과 '성루'에 섭니다. 이는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깨어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파수꾼의 결연한 신앙적 자세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이 기다림에 응답하시며, 묵시를 "판에 명백히 새겨" 그 약속이 공적이고 명확함을 알리십니다. 또한 "정한 때(모에드)"가 있음을 선언하며 ,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는 명령을 통해 믿음의 핵심 요소가 인내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핵심 3: 하나님의 핵심 응답 (합 2:4)과 '에무나'의 의미 하박국 2장 4절은 하나님의 핵심 선포로, '교만한 자'와 '의인'의 길을 대조합니다.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교만한 자(일차적으로 바벨론)는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여 스스로 무너질 운명입니다. 반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