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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8일 주일 예배 설교] 로마서 6장 12절-23절, 은혜 아래서 의의 종으로 사는 성도의 길 - 오순절 후 네 번째 주일

[2026년 6월 28일 주일 예배 설교] 로마서 6장 12절-23절, 은혜 아래서 의의 종으로 사는 성도의 길 - 오순절 후 네 번째 주일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스스로 완전히 자유롭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화가 나면 분노가 끌고 갑니다. 불안하면 돈이 끌고 갑니다. 인정받고 싶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끌고 갑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늘 무엇인가에 붙들려 삽니다. 오늘 바울은 아주 정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지금 누구의 손에 있느냐?"

로마서 6장은 은혜를 받은 성도의 삶을 말합니다.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았으면 끝이 아니라, 이제는 누구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지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죄를 단순한 실수로 보지 않습니다. 죄는 왕처럼 지배하려는 권세라고 말합니다. 6장 12절의 헬라어 βασιλευέτω(바실류에토) 는 “왕 노릇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죄는 우리를 잠깐 유혹하고 지나가는 손님이 아닙니다. 우리를 다스리려는 주인 노릇을 합니다.

우리의 공통된 연약함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삶의 주도권을 주님 아닌 다른 것에 내어주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를 정죄하려고 오는 말씀이 아니라, 다시 살리려고 오는 말씀입니다. 죄의 손에서 끌려가지 말고, 주님의 손에 자신을 드리라는 초청입니다.



본론


대지 1. 죄의 손에 내어주지 말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십시오

바울은 12-13절에서 두 번이나 “내어주지 말라, 드리라”라고 말합니다.

  • 로마서 6:12-13,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여기서 헬라어 παριστάνετε(파리스타네테), παραστήσατε(파라스테사테) 는 단순히 맡겨 둔다는 말이 아니라, 내 몸을 가져다 쓰시도록 내어놓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또 바울은 우리 지체를 죄의 도구로 내어주지 말라고 하는데, “도구”는 무기라는 뜻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 입, 내 눈, 내 손, 내 시간은 중립이 아닙니다. 죄의 무기가 되든지, 하나님의 도구가 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 성도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오늘 제 입을 가져다 쓰십시오. 제 손을 가져다 쓰십시오. 제 시간을 가져다 쓰십시오.”

화가 날 때 내 혀를 죄에게 빌려주지 마십시오. 불안할 때 내 마음을 세상 염려에 넘겨주지 마십시오. 스마트폰을 들고 있을 때도, 돈을 쓸 때도, 가족과 말할 때도 묻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누구에게 나를 내어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부담으로만 들리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먼저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몸을 내어주셨고, 우리 죄의 값을 대신 지셨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셔서 우리를 새 생명 가운데 걷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순종은 버림받지 않으려고 하는 몸부림이 아닙니다. 이미 주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이 드리는 사랑의 응답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기억하십시오. 내 몸은 내 것이기 전에, 주님이 값 주고 사신 몸입니다.


[2026년 6월 28일 주일 예배 설교] 로마서 6장 12절-23절, 은혜 아래서 의의 종으로 사는 성도의 길 - 오순절 후 네 번째 주일


대지 2. 죄의 삯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를 붙드십시오

15절 이하에서 바울은 매우 현실적으로 말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 로마서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완전히 독립적으로 살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순종하느냐에 따라 누구의 종인지 드러납니다. 죄에 순종하면 죄의 종이 되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의의 종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섬기지 않겠다”보다 “누구를 섬기겠다”입니다. 성도의 삶은 공백이 아닙니다. 죄를 떠난 자리는 반드시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바울은 마지막에 두 길의 끝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우리 함께 23절을 읽겠습니다.

  •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여기서 “삯”은 헬라어 ὀψώνια(옵소니아) 인데, 군인에게 지급하는 급료를 뜻합니다. 죄는 달콤하게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정확하게 값을 치르게 합니다. 반대로 “은사”는 헬라어 χάρισμα(카리스마) 입니다. 벌어서 받는 대가가 아니라, 은혜로 받는 선물을 뜻합니다.

이 같은 극한의 대조의 의미 속에서 우리는 복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죄는 “네가 한 일의 대가를 받아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아들이 이룬 것을 선물로 받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사망을 대신 받으셨고, 우리가 받을 수 없던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니 성도의 싸움은 절망적인 싸움이 아닙니다. 이미 승리하신 주님 안에서 싸우는 싸움입니다.

장년의 삶에 이 말씀이 더 절실합니다. 오래된 습관, 굳어진 성격, 자녀 문제, 경제적 불안, 관계의 상처가 우리를 쉽게 끌고 갑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죄의 손에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주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이다.” 거룩은 멀리 있는 특별한 삶이 아닙니다. 오늘 내 자리에서, 내 입술과 결정과 관계를 주님께 드리는 삶입니다. 그렇게 살 때 바울이 말한 열매가 맺힙니다. 부끄러움의 열매가 아니라 거룩의 열매입니다. 끝은 사망이 아니라 영생입니다.


[2026년 6월 28일 주일 예배 설교] 로마서 6장 12절-23절, 은혜 아래서 의의 종으로 사는 성도의 길 - 오순절 후 네 번째 주일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아주 분명합니다. 죄는 우리를 사용하고 버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붙드시고 살리십니다. 죄는 삯을 줍니다. 하나님은 은사를 주십니다. 죄는 마지막에 사망으로 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선물은 영생입니다.

그러니 오늘 다시 결단합시다. 내 감정도 주님의 손에, 내 시간도 주님의 손에, 내 가정도 주님의 손에, 내 몸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립시다. 그리고 우리 힘으로만 버티지 맙시다. 오순절 이후의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교회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죄를 거절하게 하시고, 의의 길을 사랑하게 하시고, 끝까지 거룩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오늘 이 한 문장을 가슴에 붙드십시오.

“나는 죄의 손이 아니라,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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