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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4일 수요 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13장 12절, 희미한 오늘, 분명한 내일

[2026년 6월 24일 수요 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13장 12절, 희미한 오늘, 분명한 내일


지금은 우리가 거울 속에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는 분명한 날보다 희미한 날이 더 많습니다. 기도해도 답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고, 열심히 살아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시간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런 우리에게 매우 따뜻한 위로를 줍니다. 바울은 지금 우리의 상태를 숨기지 않습니다. “지금은 희미하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때에는 분명해질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 은혜를 붙들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지금 희미하게 볼 뿐입니다


본문은 “지금은 우리가 거울 속에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본다”라고 말합니다. 당시의 거울은 오늘처럼 선명한 거울이 아니라 금속을 닦아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형상이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바로 그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설명합니다. 우리는 지금 많은 것을 다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도, 인생의 이유도, 고난의 목적도 부분적으로만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희미하게 보는 것이 믿음 없음의 증거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사람도 희미하게 봅니다. 기도하는 사람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도 어떤 시간에는 하나님의 뜻을 선명히 붙들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왜 나는 아직도 다 모르지?”라고 자신을 정죄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본문은 “지금은 원래 부분적으로 아는 때”라고 우리를 위로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모든 것을 빨리 알고 싶어 한다는 데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당장 알고 싶고, 언제 끝날지 빨리 알고 싶고,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하시는지 분명히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여 주시지 않고, 오늘 순종할 한 걸음만 보여 주십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보는 능력이 아니라,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이해되지 않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고 해서 믿음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 지금 희미한 것은 실패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입니다.
  • 답을 다 얻으려 하기보다 오늘 순종할 한 걸음을 찾으십시오.
  • 하나님은 내일 전체보다 오늘의 믿음에 먼저 은혜를 주십니다.
  • 낙심의 언어보다 신뢰의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왜 이렇지?”에서 멈추지 말고 “하나님, 보이지 않아도 주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히 아십니다


본문은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이라고 말한 뒤, 놀라운 말씀을 덧붙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여기서 복음의 위로가 터져 나옵니다. 내가 하나님을 완전히 아는 것이 신앙의 기초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완전히 아신다는 사실이 신앙의 기초입니다. 대한성서공회

우리는 자기 자신도 다 알지 못합니다. 왜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지, 왜 같은 자리에서 반복해서 아파하는지, 왜 어떤 날은 괜찮다가 어떤 날은 갑자기 눈물이 나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도 우리를 다 알지 못합니다. 가족도, 친구도, 교회 공동체도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자리를 다 읽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만 아시는 것이 아니라, 말로 표현하지 못한 상처까지 아십니다. 외로움도 아시고, 두려움도 아시고, 억울함도 아시고, 오래 참느라 지쳐 있는 마음도 아십니다. 사람은 부분적으로 보지만 하나님은 온전히 보십니다. 그래서 성도의 평안은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데서 옵니다.

이 진리는 매우 실제적인 위로입니다. 몸이 아파도, 형편이 막막해도, 자녀 문제로 눈물 흘려도, 하나님은 “네 사정을 모르겠다”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이미 다 아시고, 그 아심으로 우리를 품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너질 듯한 순간에도 버려지지 않습니다.

오늘, 사람에게 다 이해받지 못해도 너무 외로워하지 마십시오.

  • 하나님은 나를 부분이 아니라 전부로 아십니다.
  • 기도할 때 설명보다 정직함을 드리십시오.
  • 하나님은 이미 아시므로, 꾸며낸 언어보다 있는 그대로의 눈물과 신음을 받으십니다.
  • 자기 정죄보다 하나님의 아심을 붙드십시오.

“나는 왜 이럴까”보다 “이런 나도 하나님이 아신다”는 사실이 회복의 출발점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때에는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본문은 “그 때에는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때에는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단지 미래의 정보가 아니라, 현재를 견디게 하는 소망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이 끝이 아닙니다. 지금의 눈물이 결론이 아닙니다. 지금의 병이 마지막 문장이 아닙니다. 지금의 기다림과 답답함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지금은”과 “그 때에는”을 분명히 구별합니다. 지금은 부분적이지만, 그 때에는 완전해질 것입니다. 지금은 희미하지만,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 소망은 단순한 긍정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완성하실 미래에 대한 약속입니다. 오늘 내가 이해하지 못한 일이 그 날에는 설명될 것입니다. 오늘 내가 붙들고 울었던 기도가 그 날에는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왜 이 길을 걸어야 했는지 몰라도, 그 날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더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현재의 불완전함 때문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아직 다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끝을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미래의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울면서도 걸어갈 수 있고, 아프면서도 예배할 수 있고, 기다리면서도 소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만 보고 인생을 결론짓지 마십시오.

  • 지금은 과정이지 완성이 아닙니다.
  • 고난 속에서도 ‘그 때’를 바라보는 소망을 가지십시오.
  • 믿음은 현재의 무게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 오늘의 눈물을 헛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흘린 눈물은 장차 분명한 위로와 열매로 이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 첫째, 우리는 지금 희미하게 봅니다.
  •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히 아십니다.
  • 셋째, 하나님의 때에는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삶이 희미해 보여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이해되지 않는 시간이 길어져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내가 나를 다 알지 못하는 날에도 하나님은 나를 정확히 아십니다. 그리고 지금은 흐려도, 하나님의 때에는 반드시 분명해질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이번 한 주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 주님은 여러분을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 주님은 여러분의 눈물을 아십니다.
  • 주님은 여러분의 미래를 붙들고 계십니다.

희미한 오늘 속에서도, 분명한 내일을 소망하는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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