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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5일 주일오전예배설교] 베드로후서 1장 16절-21절, 어두움을 밝히는 가장 확실한 예언 - 주현절 후 여섯 번째 주일 및 산상변모주일

서론: 마음의 불이 꺼져가는 당신에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한 주간 얼마나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내셨을까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생경하게 느껴질 만큼, 우리는 '나'를 잃어버린 채 앞만 보고 달려가곤 합니다. 현대인들의 고질병인 '번아웃(Burnout)'은 단순히 몸이 힘든 상태가 아니라, 내면의 의미가 타버려 재만 남은 상태를 말합니다.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을 '성과 주체'라 부르며, 스스로를 착취하다 결국 소진되어 버리는 우리 시대의 아픔을 꼬집은 바 있습니다. 마치 기름이 다 떨어진 램프처럼, 마음의 불꽃이 가물거리는 상태로 이곳에 앉아 계신 분들이 많으실 줄 압니다. 저 역시 서재에 앉아 설교를 준비하며 제 노트를 뒤적이다가, 오래전 적어둔 '영혼의 가뭄'이라는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목회의 연수가 20년이 넘었음에도, 때로는 앞이 캄캄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이 저를 찾아오곤 합니다. "하나님, 더 이상 내디딜 힘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싶은 순간들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는 베드로후서의 말씀은, 그런 캄캄한 방 안에 갇힌 우리에게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는 눈부신 소식입니다. 본론 오늘 산상변모주일을 맞아, 우리는 베드로가 산 위에서 목격했던 그 찬란한 '영광'의 현장으로 초대받았습니다. 그 영광은 단순히 눈이 부신 빛이 아니라,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의 무게를 기꺼이 견디게 하는 '생명의 동력'입니다. 오늘 이 시간만큼은 세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주님의 따뜻한 품 안에서 한 걸음씩만 걸어 봅시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지금 이 자리, 여러분의 지친 어깨 위에 소망의 빛을 비춰주실 것입니다. 1대지: 우리가 본 것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본문 16절에서 베드로는 고백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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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8일 주일오전예배설교] 마태복음 5장 13절-20절, 썩지 않는 소금과 꺼지지 않는 등불 - 주현절 후 다섯 번째 주일

도입: 실존적 충격과 우리의 현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종이 위에 인쇄된 고전이 아닙니다. 이것은 태산 깊은 곳에서 캐낸 보석이며, 우리 죽은 영혼을 살려내기 위해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총체적인 교향곡입니다. 오늘 우리는 산상보훈의 심장부에서, 우리 존재의 근원을 뒤흔드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보십시오. 겉으로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어떻습니까? 최근 뉴스에 보도되는 사회적 재난과 비인간적인 범죄들을 보십시오. 인간의 부패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 앞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 너무 너무 빠른 속도로 썩어가고 있습니다. 겉은 멀쩡해 보이나 속은 이미 송장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공동묘지와 같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세상 속에 주님은 오늘 우리를 향해 충격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이것은 우리가 노력해서 쟁취해야 할 목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λόγος, 로고스)을 소유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존재론적인 선포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맛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세상이라는 절벽 아래로 아차 하는 순간 추락해버릴 가장 비참한 존재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영적 위기 속에서 오직 말씀의 회복(ἀποκατάστασις, 아포카타스타시스)만을 구해야 합니다. 본론 1. 존재의 맛을 잃어버린 미련함 (13절)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 여기서 '맛을 잃다'는 뜻의 헬라어 μωρανθῇ(모란데) 는 본래 ' 미련하게 되다 '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는 것은 단순히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우주에서 가장 미련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비극이라는 뜻입니다. 소금은 자신을 녹여야만 부패를 막고 맛을 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2026년 2월 8일 주일오전예배설교] 고린도전서 2장 1절-12절, 우리의 탁월함을 넘어서는 십자가의 역설 - 주현절 후 다섯 번째 주일

1. 우리가 갈망하는 ‘지혜’의 표준 바울이 도착한 고린도는 당대 최고의 수사학과 철학, 그리고 세속적 성공이 지배하던 도시였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에게 ‘지혜’란 타인을 압도하는 논리, 청중을 매료시키는 화술,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는 사회적 지위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며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보다 더 정직해야 하고, 더 깊이 사유해야 하며, 우리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설득력 있는 삶의 모델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라고 명하십니다. 2. 왜 우리는 자꾸만 ‘성공’의 유혹에 넘어지는가?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의 방식인 ‘힘과 과시’를 갈망합니다. 현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안에는 뿌리 깊은 우상(εἴδωλον) 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정 욕구’와 ‘성과주의’입니다. 우리는 복음조차도 나의 스펙을 높여주는 도구로 사용하려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3절)고 고백했을 때, 고린도 사람들은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카리스마 넘치고 위풍당당한 지도자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καρδία) 은 끊임없이 하나님보다 더 의지할 무언가를 찾아 헤맵니다. "내가 이만큼 유능하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안도감을 느끼는 우리에게, 바울의 ‘약함’은 패배주의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도덕적 ‘조언’으로 전락시켜, "조금 더 노력해서 멋진 기독교인이 되라"는 자기계발서 수준의 종교 생활에 안주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세상의 불안과 고독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3.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가장 영광스러운 실패’ 바울은 이 딜레마의 해결책으로 단 하나만을 제시합니다....

[2026년 2월 8일 주일오전예배설교] 이사야 58장 1절-9절, 번아웃된 당신의 영혼을 깨우는 법 - 주현절 후 다섯 번째 주일

서론: 애쓰고 있는 당신에게 건네는 인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의 얼굴을 뵈니, 반가운 마음과 더불어 한편으로는 애틋한 마음이 듭니다. 요즘 우리 시대의 화두는 단연 ‘ 번아웃(Burnout) ’입니다. 다 타버린 재처럼 마음의 동력이 꺼져버린 상태를 말하지요. 우리는 참 열심히 삽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도 말입니다. 그런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데, 왜 내 영혼은 자꾸만 가물어가는 것일까? 왜 하나님은 나의 이 간절한 애씀에 침묵하시는 것 같을까?"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58장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매일 하나님을 찾았고, 금식하며 자신을 괴롭게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신앙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공허했고, 하나님과의 거리는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무거운 종교적 의무감을 내려놓고 우리 영혼이 진정으로 숨을 쉴 수 있는 ‘ 참된 신앙의 길 ’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본론 1. 형식이 아닌 마음을 원하십니다. 본문 2절과 3절을 보면 백성들이 하나님께 따지듯 묻습니다. 우리 함께 3절을 읽겠습니다. 이사야 58:3,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성도 여러분, 이 외침이 낯설지 않지요? 우리도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는데 삶의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이런 서운함이 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단호하면서도 명확합니다.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종교적 퍼포먼스를 하는가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아브라함 여호수아 헤셸이라는 신학자는 그의 저서 『안식일』 에서 " 거룩한 것은 공간이나 물건이 아니라 ...

[2026년 2월 1일 주일오전예배설교] 마태복음 5장 1절-12절, 복 있는 사람 - 주현절 후 네 번째 주일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겨울의 끝자락에서, 오늘 우리는 주현절 후 네 번째 주일을 맞이하며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왔습니다. 세상은 늘 우리에게 '속도'와 '성과'를 요구합니다. 더 빨리 달려야 하고, 더 많은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마음은 어느덧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지고, '번아웃'이라는 차가운 그림자가 소리 없이 우리를 덮치곤 합니다. "목사님, 저는 이제 더 이상 내어줄 힘이 없어요.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저 무력하기만 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성도님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제 마음도 참으로 아픕니다. 본론 오늘 그런 여러분의 지친 어깨를 토닥여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함께 듣고 싶습니다. 주님은 산에 올라 앉으시고, 당신의 곁으로 다가온 제자들을 향해 입을 열어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은 요구가 아니라 '축복'이었고, 명령이 아니라 '위로'였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5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의 진정한 복이 어디에 있는지 함께 머물러 보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의 마음 발견: "너의 빈 마음이 복되다" 본문 3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우리는 흔히 가난한 것을 불행이라 여깁니다.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무력감을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시선은 다릅니다. 주님은 오히려 그 '비어 있음'이 복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가난함'을 뜻하는 헬라어 '프토코스(ptochos)'는 단순히 조금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절대적인 빈곤을 의미합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 계십니까? 그것은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으로만 채울 수 있는 '거룩한 공간...

[2026년 2월 1일 주일오전예배설교] 미가 6장 1절-8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 - 주현절 후 네 번째 주일

서론: 공감의 시작 – 무거운 어깨를 내어놓으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요즘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지쳤다’는 말을 참 많이 듣게 됩니다. 어떤 분은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두렵다고 하시고, 또 어떤 분은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마음은 텅 빈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번아웃(Burnout)’ 혹은 ‘정서적 소진’이라고 부릅니다. 다 타버린 성냥갑처럼, 우리 안에 더 이상 태울 열정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를 말하지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어쩌면 우리와 비슷한 마음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 수천 마리의 양을 드려야 할까? 아니면 강물 같은 기름을 바쳐야 할까? ”(7절). 그들은 정답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지만, 정작 그들의 영혼은 메말라가고 있었습니다. 본론 오늘 우리는 그 무거운 질문 앞에서, 우리를 다그치지 않으시고 조용히 손을 내미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려 합니다. "정말 내가 너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니?"라고 물으시는 그분의 따뜻한 음성 말입니다. 1. 우리가 잊고 있었던 하나님의 ‘기억’ 먼저 본문 3절에서 하나님은 마치 서운한 감정을 토로하는 연인처럼 말씀하십니다. 미가 6:3,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언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힘들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4절과 5절에서 하나님은 당신이 행하신 ‘공의로운 일’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그 기억은 무엇입니까? 종 되었던 집에서 건져주신 기억, 광야 길에서 발이 부르트지 않게 돌보신 기억입니다. 우리가 번아웃에 빠지는 이유는 ‘내가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아두면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이미 하신 일’은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에게 더 많은 성취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분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 ‘기억의 품’ 안에...

[12월 21일 대림절 넷째 주일오전예배 설교] 이사야 7장 10절-16절, 하나님은 왜 거절당해도 찾아오시는가?

서론: 흔들리는 숲과 같은 우리네 마음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지만, 따뜻한 연말 분위기 뒤편에는 내년 경제에 대한 불안과 풀리지 않는 인생의 숙제들로 잠 못 이루는 분들이 많습니다. 겉으로는 "믿습니다, 평안합니다"라고 말하며 웃고 있지만, 속마음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롭게 떨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막상 위기가 닥치니 하나님보다 당장 내 손에 잡히는 통장 잔고나 유력한 사람의 전화번호가 더 간절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에 절망하곤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인생 최대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제발 기적을 좀 구하라"고 사정하시는데도, "저는 안 구할 겁니다"라고 딱 잘라 거절해버린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런 뻔뻔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신비로운 '징조'를 강제로 쥐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밀어내는 그 순간조차 포기하지 않고 뚫고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지독한 사랑, 그 '임마누엘'의 비밀이 오늘 여러분의 두려움을 쫓아낼 것입니다. 본론: 두려움을 이기는 징조, 임마누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대림절 넷째 주일입니다. 성탄을 코앞에 둔 오늘, 우리는 이사야 7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 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1. 위기 앞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민낯 오늘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 기원전 734년경, 남유다 왕국입니다. 당시 왕이었던 '아하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북쪽의 이스라엘과 아람(시리아)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유다를 침공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왕과 백성의 마음이 어떠했습니까? 성경은 "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사 7:2)라고 묘사합니다. 거대한 태풍 앞에 놓인 나무들처럼, 온 나라가 두려움에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