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마음의 불이 꺼져가는 당신에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한 주간 얼마나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내셨을까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생경하게 느껴질 만큼, 우리는 '나'를 잃어버린 채 앞만 보고 달려가곤 합니다. 현대인들의 고질병인 '번아웃(Burnout)'은 단순히 몸이 힘든 상태가 아니라, 내면의 의미가 타버려 재만 남은 상태를 말합니다.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을 '성과 주체'라 부르며, 스스로를 착취하다 결국 소진되어 버리는 우리 시대의 아픔을 꼬집은 바 있습니다. 마치 기름이 다 떨어진 램프처럼, 마음의 불꽃이 가물거리는 상태로 이곳에 앉아 계신 분들이 많으실 줄 압니다. 저 역시 서재에 앉아 설교를 준비하며 제 노트를 뒤적이다가, 오래전 적어둔 '영혼의 가뭄'이라는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목회의 연수가 20년이 넘었음에도, 때로는 앞이 캄캄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이 저를 찾아오곤 합니다. "하나님, 더 이상 내디딜 힘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싶은 순간들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는 베드로후서의 말씀은, 그런 캄캄한 방 안에 갇힌 우리에게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는 눈부신 소식입니다. 본론 오늘 산상변모주일을 맞아, 우리는 베드로가 산 위에서 목격했던 그 찬란한 '영광'의 현장으로 초대받았습니다. 그 영광은 단순히 눈이 부신 빛이 아니라,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의 무게를 기꺼이 견디게 하는 '생명의 동력'입니다. 오늘 이 시간만큼은 세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주님의 따뜻한 품 안에서 한 걸음씩만 걸어 봅시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지금 이 자리, 여러분의 지친 어깨 위에 소망의 빛을 비춰주실 것입니다. 1대지: 우리가 본 것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본문 16절에서 베드로는 고백합니...
도입: 실존적 충격과 우리의 현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종이 위에 인쇄된 고전이 아닙니다. 이것은 태산 깊은 곳에서 캐낸 보석이며, 우리 죽은 영혼을 살려내기 위해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총체적인 교향곡입니다. 오늘 우리는 산상보훈의 심장부에서, 우리 존재의 근원을 뒤흔드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보십시오. 겉으로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어떻습니까? 최근 뉴스에 보도되는 사회적 재난과 비인간적인 범죄들을 보십시오. 인간의 부패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 앞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 너무 너무 빠른 속도로 썩어가고 있습니다. 겉은 멀쩡해 보이나 속은 이미 송장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공동묘지와 같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세상 속에 주님은 오늘 우리를 향해 충격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이것은 우리가 노력해서 쟁취해야 할 목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λόγος, 로고스)을 소유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존재론적인 선포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맛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세상이라는 절벽 아래로 아차 하는 순간 추락해버릴 가장 비참한 존재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영적 위기 속에서 오직 말씀의 회복(ἀποκατάστασις, 아포카타스타시스)만을 구해야 합니다. 본론 1. 존재의 맛을 잃어버린 미련함 (13절)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 여기서 '맛을 잃다'는 뜻의 헬라어 μωρανθῇ(모란데) 는 본래 ' 미련하게 되다 '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는 것은 단순히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우주에서 가장 미련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비극이라는 뜻입니다. 소금은 자신을 녹여야만 부패를 막고 맛을 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