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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2일 주일 예배 설교] 마태복음 13장 1절-9절, 복음이 열매 맺는 밭 - 오순절 후 일곱 번째 주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순절 후 일곱 번째 주일의 이 아침, 주님의 은혜 보좌 앞으로 나아오신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일주일 동안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시느라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안고 주님 앞에 선 여러분의 심령 위에, 하나님 아버지의 따스한 위로와 새롭게 하시는 평강이 눈송이처럼 부드럽게 내려앉기를 소망합니다. 현실 속의 갈등과 문제: 애써도 메말라가는 우리의 마음 오늘날 현대인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내면의 행복을 찾기 위해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읽고, 마음 챙김 세미나를 찾아다니며, 긍정적인 생각을 품으려 애를 씁니다. 과학 기술과 물질문명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워졌는데, 역설적이게도 현대인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과 내면의 황폐함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적 사막화(Emotional Desertification)’ 현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무리 좋은 지식을 마음속에 쏟아붓고, 긍정의 씨앗을 심으려고 해도, 정작 우리의 마음이라는 토양이 너무나 지치고 메말라 있어서 그 어떤 것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 인간관계에서 얻은 상처들로 인해 현대인의 마음은 굳어질 대로 굳어진 콘크리트 바닥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왜 내 삶에는 내가 원하는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지 않을까? 왜 내 마음은 늘 이렇게 갈급하고 메말라 있을까?" 이러한 깊은 탄식과 갈등은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의 솔직한 고백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내면의 황폐함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보려 하지만, 바꾸려 할수록 더 깊은 무력감에 빠지곤 합니다. 본문의 문제와 위기: 단단하게 굳어버린 세 가지 밭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닷가에 모여든 수많은 무리를 향해 배 위에서 친숙하면서도 깊이 있는 비유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입니다. 주님은...

[2026년 7월 5일 주일 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3장 6절-7절,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 교사헌신예배 설교

1. 현실 속의 갈등과 문제: 우리를 지치게 하는 ‘조급함’이라는 그늘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사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어린 생명들을 가슴에 품고 눈물로 기도의 자리를 지키시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복하고 위로합니다. 20여 년간 목회의 길을 걸으며 저 역시 교육 부서의 현장을 늘 지켜보아 왔습니다. 주중에는 치열한 삶을 살다가, 주일이면 어김없이 아침 일찍 나와 아이들을 맞이하는 여러분의 헌신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한편에는 늘 남모르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과 영적인 침체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초고속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음식이 배달되고, 몇 초 만에 전 세계의 정보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은 은연중에 우리의 사역 현장에도 스며들었습니다. 우리는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곧바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내 반 아이가 예배 시간에 태도가 전보다 좋아지기를, 내가 전한 공과 말씀에 즉각 눈물을 흘리며 반응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아무리 열심히 공과를 준비하고 기도로 눈물을 흘려도, 아이들은 여전히 예배 시간에 속을 썩이고 스마트폰만 바라보기 일쑤입니다. 변화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교사들은 깊은 무력감에 빠집니다. "내 노력이 부족한 걸까? 내가 능력이 없어서 아이들이 변화되지 않는 걸까?" 결국 이러한 조급함은 우리 안에 영적인 번아웃을 가져오고, 사역의 기쁨을 앗아가 버립니다. 내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2. 본문의 위기와 갈등: 인간의 연약함이 만들어낸 분열 오늘 본문이 기록된 고린도 교회 역시 바로 이와 유사한 문제로 깊은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영적으로 매우 미숙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성장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들의 이름에 집착했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속했다",...

[2026년 7월 5일 주일 예배 설교] 출애굽기 23장 16절, 첫 열매의 감사를 회복하십시오 - 맥추감사 주일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느새 한 해의 절반을 지나왔습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벌써 7월이네.” 그런데 시간만 빨리 지나가는 게 아닙니다. 감사도 참 빨리 사라집니다. 어려울 때는 간절히 기도하다가도, 조금 숨통이 트이면 금세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감사하면 좋겠다”라고 권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분명하게 명하십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출애굽기 23장 16절은 수확절과 수장절을 함께 언급하며, 첫 열매와 연말의 거둠 모두를 하나님 앞에서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은혜를 경험한 백성이었지만, 기억하지 않으면 곧 원망으로 기울었습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상반기 동안 가정의 문제, 건강의 염려, 자녀 문제, 일터의 부담, 경제적 눌림 속을 지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여기까지 왔습니다. 잘해서 온 것이 아니라, 붙드셔서 왔습니다. 오늘 맥추감사주일은 많이 가진 사람의 절기가 아니라, 은혜를 잊기 쉬운 사람이 다시 하나님 앞에 서는 절기입니다. 본론 1. 첫 열매의 감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본문은 “수확절”을 히브리어 חַג(하그), 곧 하나님 앞에서 지키는 거룩한 절기로 말합니다. 그리고 “수확”은 הַקָּצִיר(하카치르), “첫 열매”는 בִּכּוּרֵי(비쿠레), “네 수고”는 מַעֲשֶׂיךָ(마아세카)라고 표현합니다. 본문은 사람이 수고하고, 씨를 뿌리고, 밭에서 열매를 거두는 삶의 실존적인 현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수고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돌리라고 명하심으로, 열매의 최종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 첫 열매 ”입니다. 첫 열매는 남은 것 중 일부가 아닙니다. 아직 다 거두지도 않았는데,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

[2026년 6월 28일 주일 예배 설교] 로마서 6장 12절-23절, 은혜 아래서 의의 종으로 사는 성도의 길 - 오순절 후 네 번째 주일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스스로 완전히 자유롭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화가 나면 분노가 끌고 갑니다. 불안하면 돈이 끌고 갑니다. 인정받고 싶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끌고 갑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늘 무엇인가에 붙들려 삽니다. 오늘 바울은 아주 정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지금 누구의 손에 있느냐?" 로마서 6장은 은혜를 받은 성도의 삶을 말합니다.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았으면 끝이 아니라, 이제는 누구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지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죄를 단순한 실수로 보지 않습니다. 죄는 왕처럼 지배하려는 권세라고 말합니다. 6장 12절의 헬라어 βασιλευέτω(바실류에토) 는 “ 왕 노릇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죄는 우리를 잠깐 유혹하고 지나가는 손님이 아닙니다. 우리를 다스리려는 주인 노릇을 합니다. 우리의 공통된 연약함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삶의 주도권을 주님 아닌 다른 것에 내어주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를 정죄하려고 오는 말씀이 아니라, 다시 살리려고 오는 말씀입니다. 죄의 손에서 끌려가지 말고, 주님의 손에 자신을 드리라는 초청입니다. 본론 대지 1. 죄의 손에 내어주지 말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십시오 바울은 12-13절에서 두 번이나 “ 내어주지 말라, 드리라 ”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6:12-13,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여기서 헬라어 παριστάνετε(파리스타네테), παραστήσατε(파라스테사테) 는 단순히 맡겨 둔다는 말이 아니라, 내 몸을 가져다 쓰시도록 내어놓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또 바울은 우리 지체를 죄의 도구로 내어주지 말라고 하는데, “도구”는...

[2026년 6월 24일 수요 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13장 12절, 희미한 오늘, 분명한 내일

지금은 우리가 거울 속에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는 분명한 날보다 희미한 날이 더 많습니다. 기도해도 답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고, 열심히 살아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시간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런 우리에게 매우 따뜻한 위로를 줍니다. 바울은 지금 우리의 상태를 숨기지 않습니다. “ 지금은 희미하다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 그 때에는 분명해질 것 ”이라고 선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 은혜를 붙들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지금 희미하게 볼 뿐입니다 본문은 “ 지금은 우리가 거울 속에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본다 ”라고 말합니다. 당시의 거울은 오늘처럼 선명한 거울이 아니라 금속을 닦아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형상이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바로 그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설명합니다. 우리는 지금 많은 것을 다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도, 인생의 이유도, 고난의 목적도 부분적으로만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희미하게 보는 것이 믿음 없음의 증거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사람도 희미하게 봅니다. 기도하는 사람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도 어떤 시간에는 하나님의 뜻을 선명히 붙들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왜 나는 아직도 다 모르지?”라고 자신을 정죄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본문은 “ 지금은 원래 부분적으로 아는 때 ”라고 우리를 위로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모든 것을 빨리 알고 싶어 한다는 데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당장 알고 싶고, 언제 끝날지 빨리 알고 싶고,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하시는지 분명히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여 주시지 않고, 오늘 순종할 한 걸음만 보여 주십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2026년 6월 21일 주일 예배 설교] 창세기 21장 8절-21절, 열국의 어머니로 부르심 - 오순절 후 네 번째 주일

서론: 공감의 시작 여러분, 일주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요즘 세상은 참 빠르고, 우리 마음은 늘 바쁘게 쫓기죠. 직장에서, 집에서 내 몫을 다 하려고 아등바등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 같고 힘이 쏙 빠질 때가 참 많아요. "나 진짜 잘하고 있는 걸까?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 이런 불안한 마음이 불쑥 찾아오면, 길을 잃은 아이처럼 막막해지곤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만날 성경 속 아브라함과 사라의 집도 사실 바람 잘 날이 없었답니다! 자녀 문제로 크게 부딪치고,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을 삭막한 광야로 내보내는 가슴 아픈 일을 겪거든요. 이 답답하고 쓸쓸한 이야기 속에서, 어쩌면 지쳐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이 거칠고 차가운 광야 한가운데서도 우리를 절대로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오늘 이 시간만큼은 마음에 얹힌 무거운 짐을 잠시 다 내려놓고, 우리를 포근히 감싸 안아주시는 주님의 다정한 음성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좋겠습니다. 본론 1대지: 하나님의 마음 발견 자, 오늘 본문을 같이 볼까요? 약속의 아들 이삭이 태어나자마자 집안 분위기가 아주 묘해집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당장 여종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매섭게 몰아세워요. 아브라함은 그 사이에서 머리가 터질 듯 고민하며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인간적인 욕심과 질투, 먹고사는 문제로 얽힌 차가운 현실이 참 쓸쓸하게 다가오죠. 하지만 하나님은 낙심해 있는 아브라함을 그냥 두고 보지 않으셨어요! 바로 찾아오셔서 다정하게 속삭이십니다. "그 아이나 네 여종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마라."(12절) 그뿐만이 아니에요!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서 물이 떨어져 목놓아 울부짖는 하갈과 이스마엘의 울음소리도 다 듣고 계셨답니다. "하갈아, 무슨 일이 있니? 겁먹지 마라!"(17절) 하시면서 눈을 부드럽게 열어 숨겨진 샘물을 보게 하십니다. 정말 감동적이지 ...

[2026년 6월 14일 주일 예배 설교] 마태복음 9장 35절-10장 8절, 일꾼입니까 - 오순절 후 세 번째 주일

서론: 공감의 시작 “주님, 제가 아직도 일꾼일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의 따뜻한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에 조용히 내려앉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는 참 바쁘게 살아갑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직장과 가정, 수많은 관계와 교회의 일들이 마음속에 가득 차,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먼저 지치곤 합니다. 요즘 많은 성도님이 “특별한 문제는 없는데 기운이 없고, 기도는 해야겠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고백하십니다. 그러면서 ‘내가 믿음이 없고 헌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스스로 자책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습니까?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이런 영적 무기력과 죄책감에 눌릴 때가 많습니다. 봉사가 힘들면 충성심이 사라진 것 같아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왜 이렇게 게으르냐”며 매섭게 몰아세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오늘 본문은 지친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깊은 시선을 보여주십니다. 마태복음 9장 36절입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예수님은 무리의 겉모습이나 종교적인 성실함을 평가하지 않으시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생하고 기진한 그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셨습니다. 여기서부터 오늘 우리의 설교가 시작됩니다. 우리 주님은 지친 이에게 일을 떠맡기시는 분이 아니라, 지친 이를 가장 먼저 불쌍히 여기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설교 제목인 “일꾼입니까”에 무거운 부담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은 책망이 아니라, “너는 내 눈에 가장 깊이 담긴 사람이며, 바로 그런 너를 통해 세상을 살리고 싶다”는 따뜻한 음성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소모품이 아니라 ‘먼저 사랑받은 사람’으로 부르시고, 그 풍성한 사랑을 누린 자를 비로소 동역자로 세워주십니다. 본론 오늘 우리는 이 은혜의 음성을 따라 세 가지 걸음을 함께 걷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

[2026년 6월 7일 주일 예배 설교] 마태복음 9장 9절-13절, 18절-26절, 예수님을 따라 - 오순절 후 두 번째 주일

서론: 공감의 시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주님의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 조용히 내려앉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참 바쁜 시대를 살아갑니다. 하루를 열심히 살았는데도 마음 한쪽에는 이상하게 허전함이 남습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나는 충분하지 않은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몸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오래전부터 지쳐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어떤 분은 관계 때문에 지쳤고, 어떤 분은 반복되는 책임 때문에 지쳤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느낍니다. 또 어떤 분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조용히 버티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너무 오래 견디다 보니 마음의 숨이 가빠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이 어떻게 다가오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사람만 부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무너진 자리, 부끄러운 자리, 손댈 수 없는 아픔의 자리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은 무거운 명령만이 아닙니다.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시는 따뜻한 음성입니다. 본론 1대지: 하나님의 마음 발견 — 예수님은 멀어진 사람을 먼저 찾아오십니다 마태복음 9장 9절에서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보십니다. 마태복음 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당시 세리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로마의 세금을 거두며 동족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마태는 돈을 벌고 있었지만,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에 갇혀 살았을 것입니다. 이름은 불렸지만 사랑으로 불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의 과거보다 마태의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세리라고 불렀지만, 예수님은 그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이 짧은 말씀 안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2026년 5월 31일 주일 예배 설교] 마태복음 28장 16절-20절, 세상의 소음을 넘어, 영원한 평안의 춤으로 - 삼위일체주일

서론: 공감의 시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세상의 분주한 소음을 뒤로하고, 이 거룩한 자리에 참 잘 오셨습니다. 내 영혼을 따뜻하게 안아주시는 주님의 품으로 나아오신 여러분 모두를 온 맘 다해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예배의 자리에 앉으시면서, 문득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마음이 무겁지는 않으셨나요? 쉼 없이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에 발맞추느라 지친 얼굴을 보며,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하는 깊은 피로감과 무력감이 우리 마음을 짓누르곤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느새 메마르고, 영적인 에너지는 바닥을 드러내어 한 걸음도 내딛기 힘든 순간이 찾아옵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은 막막한 순간,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까요? 오늘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삼위일체주일입니다. 바로 그 지치고 연약한 우리를 향해, 조건 없는 평안과 사랑의 손길을 내미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따뜻한 초대장이 열리는 날입니다. 이 시간, 어깨를 짓누르던 세상의 무거운 짐은 잠시 내려놓으십시오. 우리를 따뜻하게 품으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평안의 걸음을 천천히 내딛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론: 하나님의 깊은 사랑 속으로 1. 하나님의 마음 발견 오늘 본문 속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고단한 일상에 지쳐 흔들리는 우리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지금 제자들이 서 있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영광스럽고 가슴 벅찬 갈릴리의 산 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제자들의 모습을 참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8: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사랑하는 여러분, 제자들이 누구입니까? 무려 3년 동안 주님과 동고동락하며 수많은 기적을 눈앞에서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두려움과 의심이 남아 있었습니다...

[2026년 5월 24일 주일 예배 설교] 사도행전 2장 1절-21절, 소통을 넘어 영혼을 살리는 언어 - 성령강림주일

서론: 공감의 시작 — 연결의 시대, 외로운 마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연결'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휴대폰 하나로 지구 반대편과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메시지의 수신 여부도 즉시 확인하는 참 편리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의 마음은 이전보다 더 외롭고 쓸쓸할 때가 많습니다. 하루 종일 수많은 말이 오고 가지만, 정작 진심은 상대방에게 가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는 서로의 주장만 평행선을 달리고, 가장 사랑해야 할 가정에서조차 깊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결국 입을 닫아버리곤 합니다. 이 불통의 악순환 속에서 지친 우리의 영혼은 "왜 아무도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지 못할까?" 하며 소리 없이 울부짖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더 가깝게 연결하겠다고 말하지만, '가까이 있음'과 '가까이 느껴짐' 사이의 아득한 거리감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깊은 갈증을 느낍니다. 오늘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하나님께서는 소통이 끊겨 아파하는 관계의 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저와 여러분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상처 입은 우리 마음을 어루만지시며 따뜻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 딸아. 내가 네 마음을 다 안다. 흩어진 너희 마음을 내가 다시 사랑으로 묶어 주마." 이 따뜻한 회복의 음성이 오늘 예배하는 모든 성도님의 심령에 가득 울려 퍼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1. 혼란 속으로 들어오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2장의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다 같이" 모여 있었지만, 그 속마음은 예수님을 잃은 두려움과 무력감으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바로 그 불안한 침묵의 순간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안에 가득했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

[2026년 5월 17일 주일 예배 설교] 베드로전서 5장 6절-11절, 상처가 아름다움이 되는 삶 - 부활절 일곱 번째 주일

서론: 깨어진 삶의 틈새로 흐르는 은혜의 빛 여러분, 요즘 참 살기 힘들다는 말씀들 많이 하시지요? 쉼 없이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 영혼은 마치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마모되어 가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 10명 중 8명이 '번아웃', 즉 영적 탈진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단순히 피곤한 수준을 넘어, 하나님을 생각할 여력조차 없는 영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인 모세나 다윗도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라고 기도할 만큼 깊은 탈진을 겪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무기력하고 힘드십니까? 그것은 신앙의 실패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세밀한 도우심을 구하라는 복된 신호인 줄 믿습니다. 일본의 '킨츠기'라는 예술 기법이 있습니다. 깨진 도자기를 버리지 않고 금가루로 이어 붙여 수리하는 방식입니다. 놀라운 점은 상처를 숨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깨진 자국을 금빛으로 선명하게 드러내어, 이전보다 훨씬 더 귀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재탄생시킵니다.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의 손길 아래 있는 '킨츠기 작품'과 같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손에 선명한 못 자국이 남았듯이, 우리의 상처는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베드로전서 말씀을 통해 우리의 상처가 어떻게 부활의 별이 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본론 1: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누리는 참된 위로 사도 베드로는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6절) 성도 여러분, 여기서 '능하신 손'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권능의 손입니다. 우리 인간의 손은 한계가 있지요. 사랑하는 자녀를 지켜주고 싶어도 지키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손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

[2026년 5월 10일 주일 예배 설교] 베드로전서 3장 13절-22절, 근거 있는 소망, 사랑의 한 걸음을 딛다 - 어버이 주일

서론: 우리 마음의 쉼표가 필요한 시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어느덧 싱그러운 5월의 햇살이 우리 곁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계절은 이토록 눈부시게 피어나는데, 오늘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요즘 참 많은 분이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십니다. 단순히 몸이 힘든 게 아니지요. 마음의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번아웃’ 상태를 호소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자녀로서 부모님을 잘 모셔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우리는 때때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어버이주일을 맞이한 오늘, 저는 여러분의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을 하나 더 얹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인생의 근원적인 힘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우리가 붙들어야 할 ‘근거 있는 소망’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며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론 1대지: 하나님의 마음 발견 - 우리를 품으시는 따뜻한 시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3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베드로전서 3: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베드로 사도가 이 편지를 쓸 당시, 성도들은 말할 수 없는 고난과 핍박 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도는 그들에게 다시 한번 ‘ 선의 힘 ’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고 가족을 돌보는 일, 그것은 우리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때로는 그 선을 행하면서도 마음이 아릴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 애썼는데, 부모님은 왜 내 마음을 몰라주실까?", "내 형편은 이런데, 어떻게 더 잘해드릴 수 있을까?" 하는 무력감이 우리를 찾아오곤 합니다. 성도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한 행위가 아니라, 우리 마음 중심에 있는 그 ‘애씀’을 보고 계십니다. 독일의 문학가 괴테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2026년 5월 3일 주일 예배 설교] 베드로전서 2장 2절-10절, 거룩한 부르심 - 어린이 주일 및 부활절 다섯 번째 주일

서론: 공감의 시작 – 분주함 속의 쉼표 하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부신 5월의 햇살이 우리 곁을 찾아왔습니다. 온 세상이 초록으로 물드는 이 계절, 우리는 ‘어린이 주일’이자 ‘부활절 다섯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솔직히 우리의 마음은 어떠신가요? 가정의 달이라는 이름 아래 챙겨야 할 곳도 많고, 해야 할 일도 참 많으시지요? 부모로서, 자녀로서, 혹은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우리의 영혼은 번아웃(Burn-out) 상태에 빠지거나, 깊은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마치 숨 가쁘게 달려왔는데, 정작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어버린 아이처럼 말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서두르지 않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그 따뜻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보려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더 잘하기’ 이전에, 우리가 ‘누구인지’를 다시 확인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대지: 하나님의 마음 발견 –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아이처럼 오늘 본문 2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베드로전서 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배고픈 갓난아이가 엄마의 품을 파고들며 젖을 찾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거기에는 어떤 가식도, 계산도 없습니다. 오직 생존을 위한 갈망과 엄마에 대한 전적인 신뢰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마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생활을 '성숙한 어른'이 되어 무거운 짐을 지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첫 번째 시선은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입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무엇을 해드려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듯, 우리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해낼 필요가 없습니다. 지친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내가 다 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하는 ...

[2026년 4월 26일 주일 예배 설교] 요한복음 10장 1절-10절, 나는 양의 문이라 - 부활절 네 번째 주일

서론: 공감의 시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절을 지나며 맞이하는 네 번째 주일 아침입니다. 봄날의 따뜻한 햇살이 우리 예배당 창문을 넘어오듯,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맑고 다정한 은혜가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의 지친 마음마다 가득하게 스며들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20여 년간 성도님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목회의 길을 걸어오면서, 저는 우리 성도님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치열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성도님들과 차를 나누며 깊은 속이야기를 듣다 보면, 참 많은 분의 어깨가 무겁다는 것을 느낍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습관처럼 일터로 향하고, 가족을 돌보며, 각자에게 주어진 무거운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하루하루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데도, 문득 찾아오는 무력감에 마음이 덜컥 주저앉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제 서재 책상에는 늘 작은 묵상 노트가 한 권 놓여 있습니다. 평소 책을 읽거나 말씀을 묵상하다가 마음에 닿는 글귀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두는 노트인데, 며칠 전 그 노트를 들추다 이런 문장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 우리는 너무 빨리 달리기 때문에,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시간을 주지 못한다 ." 참 공감이 되는 말입니다. 우리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달리고 있지만, 정작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을 잃어버려 허무함이 밀려올 때가 많습니다. 본론 하나님은 이렇게 지치고 상한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우리를 결코 정죄하시거나 다그치지 않으십니다. 왜 더 잘하지 못했느냐고 책망하는 대신, 그 무거운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 안으시며 우리의 쉴 곳이 되어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한복음 10장의 말씀은, 세상의 속도에 지친 우리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초대장입니다. 1. 하나님의 마음 발견: 우리를 품으시는 '양의 문' 첫째로,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를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7절에서...